2024.10.05
오늘은 산토리니 마지막 날이다. 3일째이지만 아테네에서 오가는 시간을 제외하면 여유가 많지 않았다. 오후에 아테네로 돌아가는 교통편을 페리 대신 비행기로 바꾸어서 시간을 벌었다. 오늘은 현지 가이드가 승용차로 안내하는 투어를 한다. 오전 9시에 토목공학 분야에서 은퇴했다는 가이드가 도착했다. 산토리니와 그리스에 대해서 잘 설명해줄 것 같았다. 첫번째 목적지는 이아(Oia)이다. 카마리를 출발하여 동쪽 해안을 따라 북으로 달렸다. 가는 도중에 산토리니 섬 북동쪽으로 8km 떨어진 해저에 분화구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지름이 3km정도 되는 콜룸보(Kolumbo) 화산이다. 1650년에 분출을 했었다. 2022년에 이 화산 아래에서 새로운 마그마 방이 발견되었다. 이 마그마 방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분출이 임박한 상태는 아니라고 한다. 산토리니섬의 북서쪽에 있는 이아 마을에 도착했다. 그리스어에서 앞에 있는 O는 발음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랜 동안 로마와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받았지만 그리스인들은 고대 그리스어와 고유 문화를 잘 계승해왔다고 한다. 현명한 민족이다.
이아의 인구는 천명 가량이다. 거의 모든 건물이 흰색이다. 도시는 강한 햇살에 눈이 부시도록 환하다. 이아는 절벽 위에 있어서 산토리니 칼데라 만과 섬들을 조망하기 아주 좋았다. 짙은 푸른색 산토리니 칼데라 바다를 배경으로 흰색 건물들이 두드러져 보였다.
칼데라 쪽 경사면에는 자그마한 고급 호텔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호텔마다 작은 수영장과 파라솔이 줄지어 보였다. 전망이 훌륭한 곳이다.
가는 곳마다, 눈길을 돌리는 곳마다 모두 절경이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산토리니가 관광객을 불러 들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전에는 건물 외벽에 석회암 가루에 소금과 물을 섞어서 발랐다고 한다. 햇빛을 반사하여 실내 온도를 낮추고 곤충의 접근을 막기 위해서였다. 산토리니의 여름 한낮에는 기온이 45 °C까지도 올라가곤 한다. 나무 그늘도 기대할 수 없는 곳이다. 요즘은 석회암 가루 대신 흰색 페인트를 칠한다. 1967년 군부 독재 정부는 이 지역의 집에는 흰색과 파란색을 칠하도록 강제했다. 애국심과 국수주의를 고양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국기 색깔과 같은 색깔이다. 이후 흰색과 파란색 건물은 그리스 섬의 대명사가 되었다. 마을 가운데에 이르자 파나기아 프라트사니(Panagia Platsani) 성당과 광장이 나왔다. 단정한 모습이다. 원래는 이아 성 안에 있던 것을 1956년 대지진 이후에 현재 위치에 재건했다. 이 성당은 한 어부가 바다에서 발견한 성모 마리아 성화를 모신 곳이다. 성모 마리아는 바다의 별로 상징되며 선원과 항해를 보살펴준다고 알려져 있다.
산토리니 칼데라를 내려다 보면서 다시 이아의 거리를 걸었다.
앞에 푸른 돔이 있는 성당이 보였다. 멀리 바다 쪽으로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유명한 곳인가 보다.
이아의 명소인 성당의 돔 3개를 보고 사진을 찍는 곳이다. 성당 2개가 나란히 서 있었다. 앞에 보이는 것은 아기오스 스피리돈 교회로 1867년 건설했다. 성 스피리돈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 그 뒤에 있는 것은 아나스타시 교회이다. 1865년에 세워졌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린다고 한다. 전통적인 키클라데스(cycladic) 건축 양식이다. 키클라데스는 그리스 본토의 남동쪽에 있는 에게해의 여러 섬을 일컫는다. 성스러운 델로스섬 주위로 많은 섬들이 원형으로 펼쳐져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델로스섬은 아폴로와 아르테미스 남매 쌍둥이 신의 탄생지로 알려져 있다. 이 건축 양식은 단순한 자재와 뚜렷한 선이 특징이다. 그리스의 강렬한 햇빛과 푸른 에게해와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고 한다. 그런데 대기하고 있는 줄이 너무 길었다. 가이드는 성당의 돔이 보이는 곳까지 우리를 데리고 가서 슬쩍 사진을 찍어주었다.
큰 길로 올라오는 길에 아나스타시 교회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정방형인데 사면에 아치가 있고 중앙에 돔을 세운 모습이다. 튀르키에에서 많이 보았던 지붕의 하중을 잘 버티는 구조이다. 동화 속에 나올법한 모습이었다.
이아를 비롯한 키클라데스 제도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은 절벽이나 비탈진 곳에 동굴을 파고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동굴 주택은 이제 비싼 호텔로 탈바꿈했다. 엄청난 숙박비에도 불구하고 몇년 전에 예약을 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한다. 할리우드 스타나 대기업 회장들이 주 고객이다. 방과 수영장에서 산토리니 칼데라가 바로 내려다 보이는 멋진 전망 탓일 것이다.
옛날 부자들은 능선에 붉은 색 암석으로 집을 지었다. 질이 좋은 붉은 색 암석은 섬의 남쪽에서만 산출된다. 이 곳까지 돌을 옮겨와야 해서 비용이 많이 들었다. 붉은 색 건물은 보기에도 아름다웠다. 지금은 레스토랑이나 상가로 이용되고 있었다.
이아 북서쪽 절벽에는 성과 요새가 남아 있었다. 중세 시대에 이 섬을 점령해서 살았던 베니스인들이 만든 것이다. 산토리니 섬에는 이와 같은 요새가 5개 있다고 한다. 당시 베니스는 강력한 도시국가로 지중해 패권을 쥐고 있었다. 그 들은 이 섬을 비롯해서 지중해의 여러 섬과 해안 도시를 차지했다. 하지만 끊임없이 해적의 침입에 시달렸다. 베니스인들은 바다와 멀고 높은 곳에 집을 짓고, 해적이 나타나면 종을 울려서 알렸다고 한다.
요새로 가려면 작은 언덕을 넘어야 했다. 이어지는 좁은 길은 멋진 기념품가게와 카페, 식당이 줄지어 있었다. 당나귀를 타고 내려오는 사람도 볼 수 있었다. 산토리니의 가파른 지형 때문에 당나귀는 오랫동안 그리고 지금까지도 교통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북서쪽 요새인 아기오스 니콜라오스 성이 보였다. 망루도 있는 곳이다. 1500년대 초인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진 성으로 해적의 침입을 감시하고 방어하기 위한 시설이다. 절벽 위에 있어서 일몰을 보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그 후 반복되는 지진으로 무너졌다.
성으로 가는 길에 왼쪽으로 아까 보았던 푸른 색 돔을 가진 성당을 볼 수 있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이아의 모습을 눈에 담아 보았다. 가파르고 험한 절벽 위로 단정한 흰색 도시가 펼쳐져 있었다.
성은 붉은 색 돌을 쌓아서 만들었다. 가까운 절벽에 많은 붉은색 돌로 만든 것 같았다. 이 지역에 흔한 화산재를 이용해서 시멘트로 사용했을 것이다.
망루와 벽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었다. 바다로 뻗은 절벽 끝에 있어서 전망이 너무 좋았다.
성 북쪽에 있는 마을의 풍차를 볼 수 있었다. 원통형 건물에 날개를 붙였다. 실제로 밀을 갈아서 밀가루를 만들었던 시설이다. 바람이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풍차로 사용하지는 않고 카페나 호텔로 바뀐 곳도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이아 시가지를 걸었다. 푸른 돔 성당, 짙은 핑크 색 꽃이 핀 나무, 그리고 산토리니 칼데라 만의 조화가 환상적이었다.
푸른 색 돔과 3개의 종이 있는 종탑을 가진 작은 성당도 만났다. 그리스에 많다는 개인 소유 성당일지도 모르겠다. 그리스에서는 부유한 사람들은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을 기리기 위해서 성당을 세운다고 한다. 그 사람의 영명 축일이 되면 가까운 사람들을 초청해서 미사를 드리고 식사를 제공한다. 물론 비용은 성당을 소유한 사람이 부담한다. 그리스 사람들은 가족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유럽 남부 문화의 특징이 아닐까 싶었다.
이아를 둘러보고 남쪽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산토리니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갔다. 해발 567m인 프로피티스 일리아스 산이다. 섬 전체가 내려다 보였다. 섬 끝에 왼쪽으로 구불어진 가늘게 보이는 곳이 방금 다녀온 이아이다. 섬의 삼각형이 끝나는 곳에 피라가 있다. 섬은 말라 비틀어진 듯 온통 황갈색으로 보였다. 정말 건조한 섬이다. 매년 수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는데 과연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물이 부족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이드는 산토리니의 물부족을 해수 담수화로 해결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에너지가 많이 필요해서 본토에서 해저 케이블을 깔고 있단다. 2025년에 본토에서 전기가 공급될 예정이라고 했다.
정상에는 프로피티스 일리아스 수도원과 성 네타리오스 성당이 있었다. 앞에 보이는 것이 성당이고 뒤에 수도원 건물이 서 있다. 18세기 초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그리스 정교회의 성화와 성물을 소장하고 있는 전통적인 키클라데스 양식의 건물이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에기나의 넥타리오스 대주교 프레스코화를 볼 수 있었다. 동방 정교회에서 가장 유명한 그리스 성인 중 한명이다. 1846년생해서 에기나 섬에 삼위일체 수도원을 세우고 그 곳에서 신앙 생활과 저술을 했다고 한다.
이 성당 역시 아치와 돔 구조였다. 벽면은 흰색으로 소박했지만 제대와 주변은 성화와 나무 조각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전망대에서 섬의 남쪽을 내려다 보았다. 편평한 대지가 펼쳐져 있다. BC1600년 화산이 분출했을 때 산토리니 섬에 화산재가 두껍게 쌓였다고 한다. 이 지역에는 북풍이 많이 불어서 화산재는 섬 남쪽에 많이 쌓였고, 이 곳에 넓은 평지가 생겼다. 이 곳의 지층은 기공이 많고 가벼운 화산재(푸마이스)로 이루어졌다. 물을 잘 흡수해서 보관하고 지진에도 강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덕분에 이 지역은 산토리니 최고의 농업 지역이 되었다.
칼데라 전체를 조망하는 포인트는 약간 더 아래로 내려와야 했다. 한 눈에 칼데라 전체를 볼 수 있었다.
내려오는 길에 포도밭에서 잠시 멈추었다. 포도나무는 말라 죽기 직전인 것처럼 보였다. 키도 아주 작았다. 더구나 줄기를 둥그렇게 엮어 놓았다. 잎이 그늘을 만들어서 수분이 증발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한 이 곳의 농법이란다. 산토리니는 화산암 토질이어서 미네랄이 풍부하다. 그래서 와인 맛이 뛰어나다고 한다. 포도가 크게 자라지 못해서 상대적으로 껍질 부분이 많게 될 것 같았다. 햇빛이 좋으니 당도도 높을 것이다. 산출량은 많지 않지만 와인을 만들기에는 최적의 포도이다. 근래에는 산토리니섬은 관광이 너무 활성화되어 주민들은 거의 농사를 짓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 저기 호텔을 짓는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산토리니는 방울토마토로도 유명하다. 강수량이 적어서 크게 자라지 못하지만 단맛과 식감이 아주 좋다고 한다. 역설적이다.
산토리니 최고의 해변으로 꼽힌다는 페리볼로스 해변으로 갔다. 화산암이 풍화되어 생긴 불랙샌드비치이다. 넓은 해안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가 머무른 카마리보다 모래가 곱고 해변이 길었다. 5km에 이른다. 10월말부터는 폐쇄한다고 한다. 동면에 들어가는 시점인가 보다. 그래서인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아크로티리에 있는 붉은모래해변을 방문했다. 주차장에 이르니 온통 검붉은색 바위로 덮힌 언덕이 보였다. 철 성분이 많은 용암이 분출한 것 같았다. 언덕 앞에 있는 흰색 건물이 두드러져 보였다. 십자가와 종탑이 있는 작은 성당이다. 아마 개인 소유 성당인 것 같았다. 바다가에 세운 것을 보니 아마 바다를 좋아한 사람을 기리려는 것이었을까?
오른 쪽으로 해변을 따라 난 길을 갈았다. 붉은 모래 해변이 보였다. 철성분이 많은 화산재가 쌓인 곳이다. 절벽에는 기울어진 지층이 잘 보였다. 가이드는 토목공학 전공자답게 산사태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 곳에서 2013년에 큰 산사태가 발생했다고 한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위험한 곳이란다.
붉은 모래 해변은 멋진 곳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해수욕과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해변 가까이에는 가파른 절벽이 서 있었다. 절벽 아래 부분은 파도가 만든 동굴도 보였다. 지층에는 당시의 강력한 화산 분출을 증명하듯 커다란 바위들도 들어 있었다.
이 지역에는 유명한 아크로티리 유적지가 있다고 한다. 화산 분출로 화산재로 덮힌 마을이다. 그리스의 폼페이라고 할 수 있다. 폼페이보다 1600년 정도 먼저 화산재에 묻혔다. 아쉽지만 이 유적지를 방문할 시간은 없었다. 이 곳에서 발굴된 유물은 내일 아테네 국립고고학박물관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산토리니 칼데라를 남쪽에서 볼 수 있는 전망대에 들렀다. 칼데라를 오른 쪽에서 감싸안고 있는 산토리니 섬과 중앙에 있는 카메니 섬, 그리고 좌측에 티라시아섬을 잘 볼 수 있었다. 아름다웠다.
마지막 방문지는 산토와인조합이다. 와인 테이스팅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입구에 들어서자 와인 테이스팅을 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이루고 서 있었다.
가이드는 우리를 안으로 안내했다. 이미 예약이 되어 있었다. 경치가 아주 좋은 곳이었다. 베란다에서 산토리니 칼데라를 감상할 수 있었다. 칼데라 감상을 위한 최고의 장소이다.
산토와인은 산토리니 와인 조합으로 1911년 설립되었다. 포도 재배와 와인 생산자를 포함해서 이 섬의 농부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설립하였다. 농업 연구개발, 유기농법, 생산된 농산물 판매 진흥 등을 도모한다고 한다. 산토리니 와인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매년 국내외 와인 대회에서 받은 상으로 한 쪽 벽이 가득했다.
3가지 와인을 시음했다. 좌측에서부터 로제, 레드, 화이트 와인이다. 포도를 약간 건조시켜서 와인을 만드는 기법을 사용한다고 한다.
와인을 조금씩 음미해 보았다. 맛과 향이 강한 편이었다. 생산량이 많지 않고 맛이 좋아서 인기가 좋다고 한다. 우리도 기념으로 화이트 와인 한 병을 구입했다.
투어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다. 수영장에 있는 풀바에서 점심을 먹고 수영도 하면서 쉬었다. 수영장 물은 해수를 절반 정도 담수화한 것이라고 한다. 수영을 마치고 샤워를 하는 물은 약간 끈적거리는 느낌이 났다. 수도물은 마시지 말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모두 해수를 담수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곳이지만 살기 좋은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4시에 여행사에서 보내준 택시가 우리를 데리러 왔다. 산토리니 공항에 도착하니 항공사 창구에 직원들이 앉아있고 보딩패스도 출력해준다. 반가웠다. 유럽에서 보기 힘든 사람이 해주는 서비스이다. 그동안 기계에서 출력하고 직접 백드랍을 하느라 우왕좌왕했던 기억이 새롭다. 공항은 아담했다.
18:40에 비행기는 아테네를 향해서 출발했다. 바다 위에 군데 군데 섬들이 이어져 있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아테네 해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야경도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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