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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유럽 여행/그리스

by Travel Memories of GG Couple 2025. 3. 23.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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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2
오늘은 아테네 오전 투어에 참여하는 날이다. 아테네는 그리스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이다. 아테네 메트로폴리탄의 인구는 360만명 가량이다. 이는 그리스 인구의 1/3에 해당한다. 아테네는 고대 그리스의 강력한 도시국가로 민주주의와 예술, 학문, 교육의 중심이었다. AD146년에 로마는 아테네를 정복하였지만 아테네의 사원과 공공시설을 파괴하지 않았다. 로마인들은 아테네의 문화와 지적 성취를 존중했다. 아테네는 자치권을 인정받으며 문화와 학문의 중심지로서 영향력을 유지했다. 고대 로마 전역에서 학자와 학생들이 아테네로 모여 들었다. 아테네는 멸망했지만 헬레니즘 시대로 접어들어 그 영향은 지중해로 뻗어 나갔다.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로마 문화를 통해서 한층 더 확산되어 서구문명과 민주주의의 요람이 되었다. 
투어 가이드는 대학원에서 고고학을 전공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투어 일정은 아테네 시내 일부를 돌아본 후 아크로폴리스를 관람하는 것이다. 처음 방문한 곳은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움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리석으로 만든 경기장이다. BC400년 경에 처음 건설되었으며,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 여신을 기리는 종교적, 스포츠 축제를 여는 곳이었다. 판아테나익 제전이라는 이 행사는 4년마다 열렸다. AC144년 아테네의 로마원로원 의원인 아티쿠스가 대리석으로 재건축했다. 5만명을 수용하는 규모였다고 한다. 4세기에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이 경기장은 잊혀졌다가 1869년에 이르러서야 발굴되었다. 1896년 근대올림픽 1회 대회가 아테네에서 열렸을 때 개막식과 폐회식 및 일부 경기장으로 사용되었다.

2004년 아테네 하계올림픽에서 다시 경기장으로 사용되었다. 지금도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올림프스에서 채화한 성화를 개최국에 전달하는 장소이다. 경기장은 길이가 204m 폭이 34m라고 한다. 올림프스의 스타디움처럼 길쭉한 운동장을 관중석이 U자 모양으로 감싸고 있었다. 관중들이 가까이에서 경주를 지켜볼 수 있는 규모이다. 곧 공연이 있을 예정인지 무대를 설치하고 있었다.  

버스는 아테네시의 중심 부근에 있는 콜로나키 지역을 순회했다. 큰 병원과 공원이 많아서 비교적 부촌이라고 한다. 전쟁 박물관이 보였다. 그리스는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에 계속 전쟁에 휩쓸렸다. 마케도니아, 로마제국과 동로마제국,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받다가 19세기가 되어 독립을 했으니 전쟁박물관을 세울 이유가 충분한 것 같았다.   

버스는 아테네 아카데미(그리스 국립연구원), 아테네대학교, 국립도서관, 그리스 의회, 신테그마 광장 등을 돌았다. 마침내 주 목적지인 아크로폴리스로 항했다. 먼저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을 방문했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와 인근에서 발굴한 청동기 시대부터 로마와 동로마 제국 시대의 유물을 전시하는 곳이다. 이 박물관은 1874년에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 건립했었다. 그러나 새로운 유물이 계속 발굴되면서 더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 영국박물관이 소장하는 파르테논신전의 대리석 유물을 반환받기 위한 공간도 필요했다. 아크로폴리스 언덕 아래 남동 쪽에 새로운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을 짓기 시작해서 2009년 6월에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면적은 축구장 2개 정도(14000 )이고, 4000여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유리로 덮힌 외관부터 매우 현대적인 건물이었다. 

이 박물관은 로마 시대와 초기 비잔틴 시대 유적지 위에 세워졌다. 아테네에서 땅을 파면 유물이 나오지 않는 곳이 없을 것 이다. 더구나 여기는 아크로폴리스와 가까운 곳이다. 입구부터 바닥의 유적지를 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네모지고 둥근 벽이 있었던 터가 보였다. 공간이 크지 않은 것을 보니 일반인들의 거주지 같았다. 

내부로 들어갔다. 관람객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가이드는 일행을 관리하기에도 바빴다. 1층 전시실은 긴 장방형이었다. 아크로폴리스로 올라가는 경사지에서 발굴된 유물을 전시하는 곳이다. 살짝 경사져 있었다. 아크로폴리스로 걸어 올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초입 부분의 바닥은 유리로 되어 있고 아래의 발굴 현장을 볼 수 있어서 현장감이 느껴졌다.  

BC3000년 전부터 AD6세기 사이에 일상생활에서 사용했던 도자기와 인형이 전시되어 있었다. 도자기에는 주로 인물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디자인이나 장식이 매우 훌륭하다고 느껴졌다. 우리나라의 청동기 시대(BC15~13세기 무렵 시작)에는 주로 무문토기가 산출되었다고 하니 더 그렇게 느껴졌다. 인물 조각도 매우 정교했다. 고대에도 도자기와 조각 전문가들이 양성되고 활동할 수 있었을 정도로 사회적으로 풍요로움이 대단했던 것 같았다.  

숯이나 고체 연료를 태워서 난방을 하는 테라코타 화로(Brazier)도 보였다. 화로는 금속으로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공기가 잘 통하도록 아래에 구멍이 나 있었다. 표면에는 다양한 장식이 되어 있었다.     

아크로폴리스 언덕 경사면에는 신이나 영웅 또는 요정을 숭배하는 동굴이나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박물관이 있는 남쪽 사면에는 아스클레피오스와 디오니소스의 성역이 있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아폴로 신의 아들로 치료의 신이다. 그가 활동했다는 에피다우로스에 많은 유적이 남아 있었다. 생노병사라는 부처님 말씀처럼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는 법이다. 치료를 원하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 부조를 볼 수 있었다. 좌측 기둥쪽 의자에 아스클레피오스가 앉아있고, 맨 앞사람은 그에게 돼지를 바치는 모습이다.  

디오니소스는 그리스 12신 중 하나로 포도주, 농경, 황홀경, 예술의 신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풍작을 위해서 디오니소스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이 때 15명으로 구성된 합창단이 디오니소스를 위한 찬가를 불렀다. 이 합창단이 분화되어 배우와 그리스 비극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디오니소스는 공연예술을 관장하는 신이 되었다. 아크로폴리스 남쪽 사면에는 디오니소스 극장이 있다. 1층 전시가 끝나가는 공간에 공연에 쓰이는 가면을 표현한 부조 유물이 서 있었다. 그 우측에는 아기 디오니소스를 목마를 태우고 가는 실레누스의 상이 서 있었다. 실레누스는 디오니소스의 추종자로 반인반수 종족이다. 디오니소스의 양아버지였으며, 님프들과 함께 디오니소스를 양육하고, 포도 수확과 수금이라는 악기 연주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아기 디오니소스의 머리는 없어졌고, 실레누스 얼굴 옆에 보이는 얼굴은 연극에 사용하는 가면이라고 한다. 주변에는 공연을 하는 무희들의 모습을 새긴 부조도 있었다. 아크로폴리스 남쪽 사면은 질병을 치료하고 즐거움을 누리는 행복한 공간이었던 것 같다. 햇살이 잘 드는 남향이어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단을 올라가자 고대시기(BC700~480)의 고대 아크로폴리스 유물을 전시하는 커다란 사다리꼴 전시실이 나왔다.
아크로폴리스는 처음에는 요새의 성격이 강했다. 지배자의 집무실과 거주공간으로 사용되었다가 점차 성스러운 장소로 변해갔다. BC13세기 경 미케네 문명기의 아테네는 지혜의 여신 아티카를 숭배하는 제정일치의 사회였다. BC8세기말부터 왕의 권력이 약해지고 소수 귀족들의 권력이 강해졌다. 이들은 집무실과 궁전을 아크로폴리스의 북서 경사면으로 옮기고, 아크로폴리스에 이 도시의 수호신인 아테나의 신전을 세웠다. BC570년 경에 현재 파르테논 신전 자리에 헤카톰페돈(Hekatompedon)이라고 하는 고대 파르테논 신전을 세웠다. 벽돌로 만든 작은 규모의 아테나 여신 신전이다. 이 신전의 페디먼트(삼각형 모양의 박공) 장식이 전시되어 있었다. 왼쪽에는 바다의 괴물 트리튼과 씨름하는 헤라클레스, 중앙에는 두 마리 거대한 사자가 황소를 붙잡아 삼키는 장면, 우측에는 상반신이 세 개이고 몸은 뱀인 반인반수의 신령이 자연의 3원소인 파도(물), 천둥(불), 새(공기)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뱀으로 표현된 몸은 자연의 4번째 원소인 땅을 상징한다. 헤카톰페돈의 장식은 고대 아테네인들의 사고와 예술적 경향을 잘 보여준다. 투박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클래시칼기의 신전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신화를 주제로 한 역동적인 모습의 신전 장식과 대조되기 때문이다. 

BC490년에 아테네는 새로운 파르테논 신전을 건립했다. 페르시아와 전투(마라톤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 신전은 완성되기도 전에 BC480년 페르시아 2차 침공 때 파괴되었다. 아테네 사람들은 BC447년부터 시작해서 1년 만에 현재의 파르테논 신전을 완성했다. 신전을 빨리 복구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불철주야로 일을 했다고 한다. 아테네에서 16km 떨어진 펜텔리코스 산에서 대리석을 채굴해서 운반했다. 가이드는 이 때 운반한 대리석 조각이 만개라고 했다. 아테네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수호신의 신전을 세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우리에게는 옛날 이야기로 여겨지는 그리스 신화는 아테네 사람들에게는 절실한 현실이자 신앙이었다.  
전시실 중앙에는 에레크테이온 사원의 기둥을 이루는 카리아티드 여인들의 상이 서 있었다. 진품이다. 아크로폴리스의 에레크테이온 사원에 있는 것은 복제품이다. 원래 6명인데 하나는 영국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전시실 우측 공간에는 수 많은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BC6세기에 아크로폴리스가 정치적, 사회적으로 더욱 중요해지면서, 사람들이 바친 봉헌물이다. 상류층은 고가의 대리석 조각, 가치있는 청동 작품, 화려한 도자기를 봉헌했다. 보통사람들은 진흙으로 만든 인형, 명판, 흉상을 봉헌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러운 자세와 생기있는 운동 선수를 소재로 한 작품이 늘어났다. 
최상층인 3층은 파르테논 신전 전시실이다. 파르테논 신전은 페르시아에 대한 승전의 기쁨과 이를 가져다 준 아테나 여신에 대한 찬미를 담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한다. 동쪽 페디먼트에는 아테나 여신이 탄생하는 순간을 표현했다. 올림프스 12신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우스의 머리를 쪼개고 나오는 아테나 여신의 성스러운 탄생 과정을 묘사한 것이다. 서쪽 페디먼트는 아테나와 포세이돈이 서로 아테네를 차지하려고 경쟁한 신화를 표현했다. 이를 통해서 아테나가 어떻게 아테네의 수호신이 되었는지 설명한 것이다. 아테나는 그리스의 가장 비옥한 땅인 아티가에 있는 도시의 수호신이 되고 싶었다. 아테나의 숙부인 포세이돈은 바다 뿐 아니라 육지에 대한 지배권도 갖고 싶어했다. 두 신은 아티카의 도시를 차지하기 위해 대결을 벌였다. 올림프스의 신들이 중재를 해서 시민들이 더 좋아하는 선물을 주는 쪽이 도시를 차지하기로 했다. 포세이돈은 샘을 선물했는데 소금기가 있는 짠물이 나왔다. 아테나는 올리브 나무를 선물했다. 식량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시민들은 아테나 여신을 선택했고, 도시 이름을 여신의 이름을 따서 아테네라고 부르게 되었다. 아래 사진은 서쪽 페드먼트를 작게 복원한 모형이다. 중앙에 포세이돈과 아테나가 마주보고 있는 모습이다.

파르테논 신전 내부에는 11.5m 높이의 아테나 여신상이 서 있었다고 한다. 유명한 조각가 파이디아스(Pheidias)가 황금과 상아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실물은 남아있지 않다.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작은 아테나 여신상을 바탕으로 그 모습을 홀로그램으로 재현해 놓았다. 120cm 가량의 크기이다. 머리에는 투구를 쓰고, 오른 손에는 승리의 여신 니케를, 왼손에는 방패와 창을 가진 모습이다. 바닥에는 네 방향에서 보이는 모습을 투영하고 있었다. 신전의 실물을 보면 감동스러울 것 같았다. 

전시실은 파르테논 신전의 모습을 실제와 같은 규모로 만들었다. 신전과 같은 46개의 기둥을 실제와 같은 간격으로 세웠다. 또한 페디먼트, 메토프, 프리즈를 실제 위치에 배치하였다. 다만 관람하기 좋게 실제보다 낮게 배치하였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페디먼트가 바닥에 있는 기단 위에 전시되어 있었다. 바로 뒤에 있는 기둥 사이에는 메토프가 붙어 있었다. 그 뒤 신전 벽에는 프리즈가 이어져 있었다. 전시실 외벽은 유리창이어서 야외에 있는 것처럼 햇빛이 잘 들어왔다. 또한 유리창을 통해서 아크로폴리스의 신전을 바라볼 수도 있었다.

출처: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홈페이지

메토프는 신전 기둥의 윗 부분 벽을 장식한 부조이다. 동쪽 메토프에는 올림푸스의 신들과 거인족 타이탄과의 전쟁, 즉 기간토마키를 묘사하고 있다. 서쪽은 아네타인들과 여인 전사의 나라 아마존족과의 전쟁, 아마조마키, 남쪽은 테세우스와 라피테스족이 힘을 합쳐 반인반마인 켄타우로스와 벌인 전투, 켄타우로마키, 그리고 북쪽은 트로이 전쟁을 묘사하고 있다. 아크로폴리스의 북쪽에는 아고라가 있었다. 아고라는 시장이면서 토론을 하는 광장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아고라가 있는 북쪽에 트로이 전쟁 메토프를 붙인 것은 그리스의 고난 극복과 위대한 승리를 상기시키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신전 기둥 안쪽에 있는 벽도 부조로 장식하고 있다. 이를 프리즈라고 한다. 주 내용은 판아테나익 제전 행렬을 나타낸 것이다. 이 제전은 4년마다 열리는 아테나 여신을 기리는 행사였다. 당시 생활상을 알 수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프리즈에는 원본 대리석 조각품도 있었지만 영국 박물관 등에 보관된 조각품을 석고로 사본을 만들어 붙인 것도 많았다.   

원본을 석고로 떠온 것 같았다.

파르테논 신전을 지었던 장치 모형도 있었다. 무거운 대리석을 높이 들어올리기 위해서 기중기 같은 것을 사용한 것 같았다. 과학기술도 대단했었던 고대 그리스이다. 

18세기초 영국 대사였던 엘긴이 파르테논을 비롯한 아크로폴리스 유적에서 수집해간 유물을 대영박물관이 매입했다. 당시 그리스는 오토만 제국의 영토였다. 엘긴은 오토만 제국의 승인을 받아서 유물을 가져갔다고 한다. 엘긴 마블스라고 부르는 이 유물은 대영박물관 파르테논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다. 그리스는 문화재를 반환 받기 위해서 아크로폴리스 박물관까지 새로 만들었다. 하지만,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으로 약탈 또는 유출된 많은 문화재가 반환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 같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아크로폴리스로 이동했다. 아크로폴리스를 복원한 그림을 찾아보았다. 서쪽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성벽으로 둘러쌓인 요새 같다. 아크로폴리스 우측에 파르테논 신전이 우뚝 서 있고, 중앙에는 프로필레아, 그 뒤에는 아테네 여신 청동상이 서 있다. 좌측 멀리 에레크테움이 살짝 보인다. 전체적으로 아주 웅장하게 느껴졌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복원화 주요 부분, 레오 판 클렌제(1846년작)

매표소로 향하는 길은 인파로 가득 찼다. 프로필레아로 가는 도중에 우측으로 히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이 내려다 보였다. AD161년에 건설되었다고 한다.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음악당이다. 1950년에 복구한 이후 수 많은 음악 공연이 열리고 있다. 고대 유적에서 열리는 공연은 더 감동이 클 것 같았다.  

아크로폴리스로 들어가는 입구 건물인 프로필레아(propylaea)에 도착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걷기도 힘들 정도이다.  BC432년에 건설되었다. 흰색 대리석 기둥과 벽이 햇살에 밝게 빛나서 장엄하게 느껴진다. 도리아식 기둥이다.  

프로필레아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고대에 무거운 돌로 이렇게 높고 정교한 건물을 세웠다니 놀랍다.  

드디어 아크로폴리스 안으로 들어왔다. 파르테논 신전의 장엄한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밝은색 대리석 건물이 두드러져 보였다. 46개의 도리아식 기둥이 신전을 둘러싸고 있다. 기둥은 위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엔타시스 기법을 사용해서 시각적 안정감을 높였다고 한다. 내부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방이 보였다. 프로나오스(전실), 나오스(본실), 오피스토도모스(후실)라는 3개의 방이 있었다. 프로나오스에 아테나 여신상이 서 있었다고 한다.  

파르테논 신전 동쪽으로 이동했다. 8개의 기둥이 동쪽면을 이루고 있었다. 기둥 위에는 엔타블라춰(entablature)라는 보가 놓여있고, 그 위에는 페디먼트가 양쪽 끝 부분에 일부 남아 있었다. 엔타블라춰 가운데 부분에 세개의 홈이 파진 부분이 보였다. 트리글리프(triglyph)라고 한다. 그 사이의 평평한 부분에 메타프 부조가 붙어있었다. 이 곳에는 아테나 여신이 태어나는 장면을 담은 페디먼트가 있었던 곳이다.   

그리스 국기가 걸려있는 전망대로 이동했다. 아테네 시가지가 보였다. 우측 중앙에 기둥 2개가 보이는 곳이 제우스 신전이고 그 주변 녹지는 국립정원식물박물관과 동물원이다. 좌측 중앙에는 국회의사당 건물이 보였다.   

아크로폴리스 북쪽 성벽과 아테네시도 볼 수 있었다. 녹지로 된 곳이 아고라가 있었던 지역이다. 

파르테논 신전을 동남쪽에서 바라보았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더 웅장하게 느껴진다. 남쪽면 중앙에 있는 기둥 일부와 보는 부서져 있었다. 내부에서는 복원공사 때문인지 크레인이 움직이고 있었다.  

발길을 돌려서 에레크테이온으로 이동했다. 이 신전은 BC430년경 페리클레스가 건축한 여러 건물 중 하나로 여겨진다. 아테나와 포세이돈-에렉테우스를 공동으로 숭배한 곳이다. 반대하는 의견도 있어서 논쟁 중이라고 한다. 이 신전은 고대 그리스 신전 건축의 규범과 달리 비대칭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어서 더 큰 건물의 미완성 부분이라는 설도 있다. 가까이 가자 박물관에서 보았던 카리아티드 여인들의 상이 지붕을 받치고 있었다. 복제품이다. 카리아타드는 머리로 보(엔테블레처)를 받치는 조각된 인물상이다. 스파르타 인근 지역인 카리아이 지역의 아르테미스 여사제들을 나타낸다는 주장도 있다고 한다.  

에레크테이온은 일부는 이오니아식 기둥으로 다른 일부는 벽과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지금까지 본 여러 신전과는 다른 특이한 양식이었다.  

에레크테이온 신전을 돌아보고 프로필레아로 되돌아갔다. 주변에는 고대 아테나 여신의 사원 잔해가 널부러져 있었다. 

아크로폴리스 관광을 마치고 서쪽 큰 길까지 내려왔다. 북쪽을 향해서 걸었다. 좌측에 있는 큰 바위에는 동굴이 있고 입구는 철창문으로 닫혀있었다. 고대 야생동물의 신인 판(Pan)을 모시는 성역이라고 한다. 제우스 신의 성역인 동굴도 있었다. 길 우측은 녹지인데 고대 아테네 아고라 등과 같은 유적지였다. 요구르트 스무디로 더위를 달래면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아테네를 세웠다는 테세우스 동상을 지나서 칼라스 마마라는 그리스 레스토랑에서 멈추었다. 분위기가 좋은 곳이었다.

파스타와 문어 요리를 시켰다. 토마토소스에 익힌 송아지 고기 스튜를 덮은 파스타이다.  

문어구이와 감자샐러드이다. 두 가지 모두 맛이 훌륭했다.

바로 옆에 있는 역(Thiseio)에서 1호선 전철을 탔다. 오모니아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고 파네피스티미오에서 내렸다. 아테네의 교통비는 저렴한 편이었다. 

오전에 버스 안에서 보았던 멋진 건물을 보러 갔다. 먼저 아테네 아카데미로 갔다. 1926년 설립된 그리스 국립 연구원이다. 자연과학, 인문학과 예술, 윤리와 정치과학 연구부가 있다. 고대 아테네의 플라톤 아카데미를 계승했다고 한다. 네오클래식 양식 건물이다. 파르테논 신전을 닮은 건물이었다. 기둥은 이오니아식이다. 계단 좌우에는 플라톤과 소크라테스 석상이 앉아 있었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학문적으로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그 뒤 기둥에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와 음악과 의술의 신 아폴로가 서 있었다.    

중앙 건물의 지붕을 살펴보았다. 지붕 양측에는 스핑크스가 앉아 있었다. 아카데미를 보호하고자 함일 것이다. 페디먼트에는 아테나 여신의 탄생 장면을 담고 있다고 한다. 중앙에는 제우스신이 자리잡고 있고 좌측에 갓 태어난 아테나 신, 좌우에는 헤파에스투스, 헤라 신 등이 바라보는 가운데 아이리스가 아테나의 탄생을 선언하는 모습이다. 아이리스는 무지개의 신으로 신의 전령이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 신화는 이렇게 오늘날까지 훌륭한 상징과 서사로 기관의 주체성과 활동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옆에 있는 아테네대학교 본부 건물로 이동했다. 아테네 아카데미와 함께 건설된 건물이다. 아테네대학교는 1827년에 설립된 그리스에서 가장 오래된 고등교육 기관이다. 학생 수가 7만명에 달하는 유럽 최대 규모 대학 중 하나이다. 캠퍼스가 여러 곳에 있으며, 이 건물에서는 주로 큰 행사 열린다고 한다. 네오클래식 양식의 건물이 단정하면서도 장엄한 느낌을 주었다.

아테네대학교 본부 건물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기둥 뒤의 벽면 프레스코 장식이다. 중앙에는 이 대학을 설립한 오토 왕이 르네상스 시대 여성 모습으로 표현된 과학으로 둘러싸여 왕좌에 앉아있는 모습이다. 좌측과 우측 회랑에는 인간을 창조하고 불을 가져다 준 프로메테우스에서부터 고대 그리스 세계가 펼쳐지며, 마지막은 사도 바울로 마무리된다. 이는 그리스의 신앙이 올림피아의 신들에서 기독교로 전환되었음을 상징한다고 한다. 

아테네대학교 본관 옆에는 국립도서관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테네아카데미, 아테네대학교 본관과 함께 건립되었으며, 이 세 건물을 합쳐서 아테네 삼부작(Athenian Trilogy)이라고 부른다. 백만점 이상의 도서와 문서를 소장하고 있었다. 소장 도서가 많아지고 새로운 기술의 발달 때문에 국립도서관은 현대식 건물로 이전했다. 이 곳에는 일부 도서만을 소장하고 있다. 

아테네 삼부작 건물을 보면서 건물의 규모와 아름다움과 장엄함, 그리고 페디먼트와 파사드, 동상으로 표현된 신화와 역사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오전에 돌아본 아크로폴리스의 유적들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만약 시간을 거슬러 본래 모습을 갖춘 아크로폴리스와 파르테논 신전을 본다면 아주 큰 감동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긴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고 전철을 이용하여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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