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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델파이

유럽 여행/그리스

by Travel Memories of GG Couple 2025. 2. 18.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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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30
델파이를 출발한 버스는 먼저 아라쵸바(Arachova)로 출발했다. 파라나소스산 사면을 따라 난 구불구불한 길을 올라갔다. 겨울철 스키리조트로 유명한 멋진 도시라고 했다. 전망대에서 도시와 계곡을 볼 수 있었다.  

도시는 크지 않았다. 버스는 기념품 판매점 앞에 우리 일행을 내려주었다. 그리스 패키지는 아침부터 쇼핑을 하도록 한다. 구매할 것도 없어서 거리로 나섰다. 간선도로 하나가 도시 가운데를 관통하고 있었다. 산비탈에 아름다운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멀리 보이는 바위 위의 시계탑이 아름답다. 원래는 18세기에 세워진 성모마리아 성당의 종탑이었다고 한다. 이 성당은 1870년에 발생한 지진으로 무너졌다. 1908년에 시계를 장착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버스는 왔던 길을 내려와서 아래에 있는 델파이 유적지로 향했다. 델파이는 고대 그리스에서 세계의 중심이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 신이 세상의 동쪽과 서쪽 끝에서 독수리를 동시에 날려 보냈다. 이 독수리들이 날아서 만난 곳이 델파이였다. 그래서 이 곳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배꼽, 옴파로스가 있는 곳이다. 그리스어에서 델파이의 어원이 자궁이라고 한다. 
아폴로는 델로스섬에서 태어난 후 신탁을 세우기 위해서 신성한 장소인 이 곳 피토에 왔다. 하지만 이미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신전이 있었다. 이 신전은 엄청나게 큰 뱀인 피톤(Python)과 그의 부인 피티아(Pythia)가 지키고 있었다. 아폴로는 활을 쏴서 괴물 뱀을 죽이고 예언 능력이 있는 트리푸스(Tripus, 삼발이 솥)를 차지했다. 지명도 피토에서 델파이로 바꾸고 자신의 신전을 세웠다. 아폴로는 자신이 죽인 괴물 피톤을 기리고 자신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피티아 제전을 창설했다. 이 제전은 올림피아 제전 다음가는 범그리스 스포츠 행사가 되었다. 이 이야기를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처음에는 가이아를 숭배하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아폴로를 숭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변심하게된 명분이 필요했나 보다. 아폴로는 제우신 신의 아들이며, 고대 그리스인의 숭배를 받은 12신 중 하나이다. 잘생기고 능력있는 남자 신이었으니 갈아탈 만하지 않았을까?
델파이는 BC8세기에서 4세기 사이에 융성했다. 도시국가는 아니었으나, 보호지역으로 자치권을 인정받은 곳이었다. 신성한 아폴로 신을 모신 고대 그리스의 종교적 성지였다. 특히 아폴로 신탁이 영험하다고 소문이 났다. 그리스 전역과 지중해 인근에서 사람들이 신탁을 받으려고 밀려 들었다. 신탁은 일년 중에서 따뜻한 9개월 동안에만 실시되었다. 신탁 하나에는 하루가 걸렸다. 제일 먼저 여사제 피티아가 정화의식을 했다. 근처의 카스탈리아 샘에서 목욕을 하고, 월계수 잎을 태우고, 성수를 마셨다. 다음에는 아폴로신에게 동물(대체로 염소)을 희생해서 제물로 바쳤다. 피티아는 아폴로 신전 안의 성소인 아디톤(Adyton)이라는 방에서 신탁을 수행했다. 이 방에는 아폴로 동상과 옴파로스가 있고 그 사이에 트리푸스(신성한 삼발이 솥)가 있었다. 피티아는 솥 위에 앉아서 바닥의 틈에서 나오는 기체를 들이마셨다. 화산가스였던 것 같다. 그리스는 화산활동이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환각 상태에서 피티아는 상징적인 언어로 말을 했다. 보좌하는 남자 신관이 이를 듣고 글로 적어서 의뢰자에게 주었다. 아래 사진은 신탁하는 장면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출처: https://www.worldhistory.org/image/15380/the-oracle-at-delphi-artists-impression/ (화가: Mateusz Przeklasa)

신탁은 도시국가의 대표자가 나라의 중대한 결정해야 할 사항을 묻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왕가에서 예언을 의뢰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그리스 전역은 물론이고 지중해 연안에 있던 많은 나라의 군주와 개인들이 아폴로신의 예언과 지침을 얻기 위해서 줄을 지어 몰려왔다. 이들은 제물로 귀중품을 바쳤다. 아폴로 신전의 곳간은 늘 풍요로왔다. 그래서 델파이에는 그리스 각 도시국가의 이름을 딴 보물 창고가 세워졌다. 여기에는 도시국가의 소중한 보물도 있었다고 한다.  
델파이 유적지는 1880년 프랑스 고고학팀이 처음으로 발굴을 시작했다. 이 때부터 델파이의 문화적, 예술적 풍요로움을 보여주는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 먼저 델파이 고고학박물관에서 훌륭한 유물을 음미할 시간을 가졌다.

제일 먼저 눈길을 끈 것은 대리석으로 만든 스핑크스였다. 낙소스섬 사람들이 BC560년에 바친 것이다. 몸은 사자, 머리는 여인, 날개는 독수리의 모습이다. 원래 위치는 델파이 유적지의 아폴로신전 앞에 있는 다각형 석벽 앞이다. 10m 높이의 이오니아식 기둥 위에 서 있었다. 스핑크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이다. 그리스어로 교살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수수께기를 내고 풀지 못하면 잡아먹었다고 한다. 무서운 이미지이기 때문에 무덤이나 성역의 수호자로 여겼다. 이 스핑크스는 아폴로 신전을 보호하기 위해서 세웠을 것이다. 이 스핑크스의 얼굴은 착한 소녀같아서 무서운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낙소스 사람들은 델파이의 아폴로 신전 건설에 재정적으로 많은 후원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도시국가보다 먼저 피티아의 예언을 받을 수 있는 특권을 얻었다.   

커다란 남자 대리석 석상도 인상적이었다. BC6세기의 아르고스의 쌍둥이 전사의 상이라고 한다. 어깨가 넓고 근육이 발달한 남성적인 모습이다. 왼발을 살짝 앞으로 내딛고 있다. 이 석상은 헤로도투스의 이야기 속 주인공이라고 한다.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는 재산이 엄청나게 많았다. 그는 아테네의 법률가 솔론에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내심 매우 부유한 자신을 지칭하기를 기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솔론은 클레오비스와 비톤이라는 쌍둥이 형제를 꼽았다. 이 두 형제는 많은 스포츠 제전에서 우승했을 정도로 체력과 경기력이 뛰어났다. 두 형제의 어머니는 헤라 신전의 여사제였다. 어느날 어머니가 중요한 의식을 위해서 신전에 가야 했다. 그러나 마차를 끌던 소가 없어져서 이 두 형제가 직접 마차를 끌어서 멀리있는 신전까지 어머니를 잘 모셨다. 행사에 참석했던 모든 군중들은 두 형제를 칭송했다. 의식을 잘 마친 어머니는 헤라여신에게 두 형제에게 최고의 선물을 내려주시기를 간청했다. 헤라여신은 쌍둥이 형제에게 가족과 시민들의 사랑과 칭송 속에서 고통없는 죽음을 선물했다. 우리에게는 쉽게 공감이 가지 않는 이야기이다. 솔론의 뜻은 인간의 행복은 재물과 무관하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온전하지 않은 전시물이 보였다. 황소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었다. BC6세기의 작품이다. 나무로 틀을 짜고 점토나 왁스, 석고를 덧붙여서 황소의 모양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위에 은박을 붙여서 완성했다. 뿔, 귀, 발굽 등은 금박으로 만들었다.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상과 비슷한 방법으로 만든 것 같았다. 성스러운 길 입구에 있었다고 한다. 반짝이는 모습이 대단했을 것 같았다. 

황금으로 된 전시물이 벽을 채우고 있었다. 황금과 상아로 만든 것으로 크리셀레판티네(Chryselephantine)라고 부른다. 워낙 귀중한 소재로 만든 것이어서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다고 한다. BC6세기 작품인데, 1939년에 발굴되었다. 아폴로(좌), 아르테미스(중앙), 레토(우)의 모습이다. 아폴로가 델파이를 방문할 때 여동생 아르테미스와 어머니 레토가 동행했다. 델파이에서는 아폴로와 함께 이들도 신성시했었던 것 같았다. 아폴로의 머리카락은 은으로, 머리를 땋아서 뒤로 흘러내린 부분은 황금으로 만들었다. 아르테미스는 황금 티아라를 쓰고, 황금 귀거리를 하고 있다. 레토도 황금 티아라와 장식을 하고 있었다. 세 사람 모두 신체에도 황금 장식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델파이의 무희들로 불리는 돌 기둥이 서 있었다. 세 사람의 여성이다. 아테네 사람들이 헌정한 것으로, 아티카의 첫째 왕인 케크롭스 1세의 딸들이다. 아폴로 신전을 향해서 춤추며 걷는 사람들의 행렬에 참여한 모습이라고 한다. 아폴로신전 내의 신성한 방에 있었다고 한다. 이 조각 위에는 청동제 트리푸스(삼발이 솥)가 있었다. 그 위에 옴파로스가 놓여있었다고도 한다.  

옴파로스 진품을 만났다. 1.64m 크기의 달걀 모양 대리석이다. 표면에 새겨진 부조는 모직 천 아그레논의 직조를 모방한 것이라고 한다. 고대에 이 곳을 방문했던 파우사니아스(Pausanias)의 기록에 의하면 옴파로스는  모직 천으로 덮여있었고, 모직 천 안에는 인어 모양의 보석이 들어 있었다. 옴파로스 위에는 금빛 독수리 두 마리가 고정되어 있었다. 제우스가 날려 보냈던 독수리 모습일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옴파로스가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수렴하는 능력이 있어서 예언을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했다.  

청동으로 만든 전차를 끄는 기수(charioteer) 동상은 실물같아 보였다. 델파이에서 가장 유명한 동상이라고 한다. 말과 전차까지 포함한 커다란 조각 작품들의 일부이다. 포리칼로스(Polyzalos)에 의해서 헌정된 것이다. 그는 시칠리아의 군주였는데 본인의 피티아 제전(BC 474, or BC470)의 전차경주에서 우승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헌정했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유적지로 이동했다. 입구에서 델파이 유적지 전경을 볼 수 있었다. 제법 경사가 심한 비탈면에 펼쳐져 있었다. 중앙에 아폴로 신전이 보이고, 그 곳을 향해서 신성한 길이 이어져 있었다. 군데 군데 사이프러스 나무가 길게 서 있었다.  

당시 모습을 복원한 그림 자료를 찾아보았다. 유적지만 보는 것보다 이해하기 쉬웠다. 중앙에 아폴로 신전이 웅장하게 서있다. 그 아래에는 도시국가들이 세운 20개의 보물창고들이 신성한 길을 따라 모여 있는 모습이다. 신전 주변에는 높은 기둥과 그 위에 동상이나 조각들이 서 있다. 신전 양쪽과 신성한 길 입구에는 주랑들이 보인다.  아폴로 신전 뒤에는 노천극장과 스타디움이 있었다. 이 곳에는 군사적 승리와 중요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비도 많았다고 한다.

출처: https://www.anasynthesis.co.uk/index.php/delphi/delphi-2020

신성한 길 입구에 들어섰다. 입구 우측에는 둥근 기둥이 늘어서 있다. 로마시대 아고라 건물터이다. 원래 있던 건물을 로마식으로 재건축했다고 한다. 순례자들이 봉헌물을 사던 곳이다. 그 뒤에는 기념비와 조형물이 서 있던 받침대가 늘어서 있는 신성한 길이 계속되었다.  

도시국가들의 보물창고 터가 이어졌다. 그리스의 각지의 도시국가들은 신성한 델파이 신전에 자신들의 보물을 바치고 또 저장해 두었다. 

경사진 길은 끝에서 반대방향으로 구부러졌다. 옴파로스를 발견한 장소에 복제 옴파로스를 세워두었다. 뒤에 보이는 경사면에는 도시국가들의 보물창고 터가 이어져 있었다.   

복원을 해 놓은 시프니안스의 보물창고를 볼 수 있었다. 시프니아는 금과 은이 많이 나오는 에게해의 섬이다. BC525년에 건립했다고 한다.   

아테네 보물창고도 볼 수 있었다. 마라톤 전투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BC496년에 지었다고 한다. 가장 잘 보존된 것이다. 

이제 아폴로 신전 바로 아래에 이르렀다. BC548년 두번째 아폴로 신전을 지을 때 이 석벽도 함께 만들었다. 돌을 다각형으로 가공하고, 그  사이에 모르타르나 시멘트를 사용하지 않고 그냥 쌓은 것이다. 잉카의 석벽과 유사하다. 지진에 잘 견디는 구조라고 한다. 지난 2500년 동안 발생한 수많은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석벽 앞에는 아테네인들의 스토아(Stoa)가 있었던 자리이다. BC510~470년에 세웠다. 아테네인들이 제전에서 받은 트로피를 전시한 곳이다. 신전으로 가는 길목이어서 전시하기 좋은 곳이다. 원래 7개 돌기둥과 나무 지붕이 있었으나 기둥 3개만 남아있었다. 

마침내 아폴로 신전 앞에 섰다. 그리스 3대 신전 중 하나이다. 첫번째 신전은 BC7세기에 나무로 만들었다. BC548년에 화제로 소실되었고, BC510년에 복원했다. BC373년 지진으로 파괴되고, BC330년에 다시 세웠다. 원래 건물의 앞뒷면에는 각각 6개의 기둥이 서 있고, 옆면에는 각각 15개의 기둥이 서 있었다. 지금은 기둥 6개만 남아있었다. 신전 동쪽 지붕 아래 공간(pediment)에는 아폴로, 아르테미스, 레토가 델파이에 도착하는 장면이 조각되어 있었고, 서쪽에는 거인과 올림피아 신 사이의 전투 장면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신전은 비스듬한 경사길로 이어져 있었다. 우리 좌측에 보이는 기반석은 로마 아메밀리우스 파울루스(Amemilius Paulus)의 동상이 서 있던 곳이다. BC168년 피드나에서 로마군이 마세도니아의 페르세우스를 패퇴시킨 기념물이다. 

신전 뒤에는 BC4세기에 건축한 노천 극장이 있었다. 돌로 만든 좌석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약 5천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다. 피티아제전 때는 음악 경연도 있었다고 한다. 아폴로가 음악을 주관하는 신이기도 하다. 행사 때에는 연극도 실연했다. 여기에서 조금 더 올라가서 좌측으로 가면 피티아제전을 했던 스타디움이 나온다.  

아폴로 신전 뒤로는 가파른 절벽이 웅장하게 서 있었다. 신전 뒤쪽에 BC182년에 세웠다는 비티니아의 프루시아스 II세의 기둥이 보였다. 9.7m 높이의 기둥 위에는 말을 탄 왕의 동상이 서 있었다고 한다.   

신전 옆에 있었던 주랑의 기둥도 남아 있었다. 양팔을 벌려 기둥을 살짝 안아보았다. 2천년이 넘는 세월과 고대 그리스의 모습을 느껴보았다. 

신전 반대편으로 이동했다. 청동으로 만든 뱀 모양의 기둥을 만났다. 7.5m 높이라고 한다. 원래는 기둥 위에 뱀의 머리 3개가 위를 보고 있었고, 그 위에 트리푸스(다리가 세개인 솥)와 황금잔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BC479년에 플라타에아(Plataea) 전투에서 페르시아군에게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조형물이었다. 페르시아군에게서 노획한 청동 무기를 녹여서 만들었다. 하지만 이 델포이 청동기둥은 복제품이다. 진품은 AD330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풀로 가져가서 히포드롬 광장에 세웠다. 튀르키에 이스탄불에 가면 찾아봐야겠다. 뱀 머리 일부는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청동 기둥 뒤에는 사각으로 쌓은 제단이 보였다. 키오스 섬 사람들이 BC4세기에 쌓은 것이다. 청동기둥의 우측에는 태양 신의 전차 동상이 서 있었던 기단부가 있었다. 그리고 더 우측에는 2층으로 된 주랑(스토아)이 있었다고 한다. 

델파이 유적 관광을 마치고 잠시 쉬면서 그릭커피를 한잔했다. 필터로 거르지 않아서 그런지 진하고 커피알갱이가 혀에 거슬렸다.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조금 이동하자 길 아래에 톨로스 건축물과 아테네 여신 신전이 보였다. BC4세기에 테오도로스가 건축한 것이라고 한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델파이는 BC480년에는 페르시아인의 공격을 받았고, BC279년에는 갈리아인들의 공격을 받았다. BC191년에는 로마의 손에 넘어갔다. 하지만 그 후로도 신탁과 피티아 제전은 지속되었다. AD393년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선포한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모든 이교의 성소 폐쇄를 명령했다. 델파이는 이후로도 300여년간 지속되었지만 점차 쇠퇴하게 되었다.  
점심은 심포지아라는 식당에서 했다. 규모가 엄청나게 큰 식당이다. 유명하다는 생선 구이를 맛보았다. 익힌 야채를 곁들여서 맛있게 먹었다. 마침 내 생일이어서 건미와 L교수님 일행도 축하해주었다.  

메테오라를 향해서 출발했다. 아주 험한 산길을 한동안 통과했다. 마침내 동쪽에 있는 평지로 내려왔다. 레오니다스와 300 스파르타 용사 기념탑에 들렀다. 유명한  테르모필레(Thermopylae) 전투가 있었던 곳이다. 페르시아의 2차 침공을 당한 그리스는 그리스 도시국가 연합군을 구성했다. 12만에서 30만 사이의 규모를 가진 페르시아군대가 그리스 북쪽에서 진군해왔다.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는 7천여명에 불과한 병력으로 싸우기 위해서 테르모필레의 좁은 협곡을 선택했다. 그리스 연합군은 3일 동안 잘 방어를 했다. 그러나 한 지역 주민이 페르시아군에게 비밀통로를 알려주는 바람에 페르시아군에게 포위당하게 되었다. 레오니다스는 부대의 퇴각을 명령하고, 자신은 스파르타군 300명, 테스피안군 400명, 테베스군 400명 등과 함께 마지막까지 용맹하게 싸웠다. 지금은 이 곳을 흐르는 강물의 퇴적작용으로 지형이 변해서 당시의 협곡을 알아볼 수 없다고 한다. 한편 이 곳을 돌파한 페르시아군은 남으로 진격하여 아테네까지 점령했다. 하지만 펠로폰네소스반도를 침공하는 데에 실패하고, 살라미스 해전에서 패하게 되어 결국 퇴각했다. 레오니다스 청동상과 좌우 전사한 무명용사를 기리는 석상을 볼 수 있었다. 2007년 이를 주제로 '영화 300'이 만들어졌다.

휴게소에 들러 휴식을 취한 후 바로 메테오라가 있는 칼라바카로 이동했다. 시내에서도 우뚝 솟은 절벽 바위산이 잘 보였다. 절벽 위에는 수도원들이 있었다. 내일 방문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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