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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코린트 운하, 에피다우루스, 미케네

유럽 여행/그리스

by Travel Memories of GG Couple 2025. 2. 2.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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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8
그리스 여행은 그리스 현지 여행사의 영어 패키지를 이용했다. '투어레이다'라고 하는 국제 여행 포털을 통해서 예약할 수 있었다. 원래는 9박 10일 일정이다. 주요 일정은 그리스 본토 5일, 산토리니섬 3일이다. 그리스 본토에서는 아테네, 에피다우루스, 미케네, 올림프스, 델파이, 메테오라를 돌아본다. 나머지 2일은 아테네 도착과 아테네 출발이다. 우리는 일요일에 그리스를 떠나려던 일정을 하루 늦추어서 10박 11일이 되었다. 월요일에는 항공료가 내려가서 하루 숙박비가 생겼다.
그리스는 공식 국가 명칭이 헬레닉공화국이다. 위치는 발칸 반도의 남쪽이다. 섬이 1000여개나 된다. 인구는 천만명이 약간 넘고 면적은 남한보다 약간 더 크다. 서구 문명의 요람으로, 민주주의와 그리스 신화, 서양철학, 문학, 사회과학, 과학 등 학문의 발원지이다. 고대 그리스 문명은 BC3000년 경부터 발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크레타섬을 중심으로 한 미노아 문명이 발전했다. BC18세기 경부터는 본토를 중심으로 미케아 문명이 발전했으며, 도시국가 시대를 거쳤다. 하지만 BC300년 경부터 이민족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마케도니아, 이어서 로마제국, 동로마제국의 지배를 AD1453년까지 받았다. 그 뒤에 그리스 본토는 1830년까지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이 기간 동안 일부 섬과 항구는 이탈리아 반도의 도시국가였던 베니스와 제노아가 지배했다. 1830년에야 독립하여 근대국가를 형성해 나갔다.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진 나라이다.
어제 자정이 넘어서 호텔에 도착했지만 아침부터 서둘러야 했다. 7시 반에 호텔 로비에서 픽업가이드를 만났다. 앞으로 4일 동안 함께 할 버스에 올랐다. 관광가이드는 유쾌한 그리스 중년 남성이었다. 그리스 억양이 강한 영어를 구사했다. 거침없이 설명을 해 나갔다. 경력이 많은 것 같았다. 버스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로 가득찼다. 대체로 나이든 사람들이 많았다. 

첫번째 정차지는 코린토스 운하였다. 코린토라는 이름이 친숙하다. 성경에 코린토 1서, 2서 편지가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에페소에서 AD55년 경에 쓴 것이라고 한다. 코린토스의 기독교인들이 당면했던 신학적, 실제적 문제에 대한 답변이 담겨있다. 이 지역은 초기 기독교 확산의 중요한 배경인 것이다. 또 그리스 기둥 양식 중 하나로 코린트 양식이 유명하다. 기둥 꼭대기를 나뭇잎으로 감싼 것처럼 장식하는 화려한 양식이다. 이 운하는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연결하는 가느다란 부분에 있었다. 북쪽의 코린트만과 남쪽의 사로닉만을 연결한다. 길이가 6.3km, 폭은 20여m라고 한다. 펠로폰네소스반도를 돌아가는 것보다 700km를 단축할 수 있다. 폭이 좁아서 중소형 배만 이용할 수 있다. 고대부터 많은 정치가나 황제들이 이 곳에 운하 건설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다이나마이트의 발명으로 1893년에 운하를 완공할 수 있었다. 운하 위로 다리가 나 있었다. 다리 위에서 양쪽 운하를 살펴보았다. 폭이 좁은 물길이 직선으로 이어져 있었다.    

코린토스는 도시국가시대에는 아테네, 스파르타 다음으로 발전했던 곳이었다. 많은 유적이 남아있다고 한다. 우리 버스는 이 도시에 들르지 않고,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고대 유적이 계속 보였다. 그리스는 건조한 지역인 듯 산은 빛바랜 녹색 나무로 덮여 있었다. 창밖으로 바다가 보였다. 백사장 해변도 나타났다. 고대 도시가 바다에 수몰되어 있는 곳이다. 유적 위에서 수영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이알라시 (Yialasi) 해변이다. 로마 시대에 이 지역의 아르골리드 반도에는 큰 항구가 있었다. 지리적 입지가 좋고 토지가 비옥해서 해안을 따라 로마인들의 별장이 많았다. 그 중 일부가 AD 5세기 경에 지진과 해수면 상승으로 침수된 것이다. 아틀란티스 전설이 떠올랐다. 바다 건너편에는 BC3세기에 분출했다는 메타나 화산이 서 있었다. 
두번째 목적지인 에피다우루스(Epidaurus) 고대 원형극장에 도착했다. 에피다우루스는 고대 그리스의 작은 도시국가(폴리스)였다. 도시 이름은 아폴론 신의 아들이자 이 곳의 첫번째 왕이었던 에피다우로스 (Epidauros)에서 따온 것이다. 아폴론은 올림포스 12신 중 한 명이다. 제우스와 레토의 아들로 태양, 예술, 궁술, 의술, 음악, 이성, 예언, 광명, 진실, 목축 등을 주관하는 신이다. 신화 속에서 항상 젊고 현명하며, 늠름하고 우아한 미남으로 묘사된다. 아폴론의 다른 아들인 아스클레피우스(Asclepius)도 이 곳에서 활동했다. 그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 의술의 상징적 존재이다. 세계보건기구 깃발에 사용된 뱀이 감긴 지팡이가 아스클레피우스의 지팡이이다. 의성 히포크라테스도 아스클레피우스 아래에서 공부하고 치료도 했다고 한다. 이 도시는 그리스의 의학과 치료의 중심지로서 번성했다. 치료를 위한 목욕시설, 호스피스 시설, 아스클레피우스와 아프테미스 신전, 숙박 시설, 경기장 등이 세워졌다. BC 4세기에는 큰 규모의 극장도 세워졌다. 공연 관람은 치료의 일부였다고 한다. 특히 에피다우루스 극장은 음향학적 우수성과 대칭적인 아름다움으로 손꼽힌다. 그리스 시대에는 34열이었는데 로마 시대에 24열을 추가하였다. 최대 14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규모이다. 극장에 들어서자 우선 큰 규모에 감탄했다.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무대 가운데 바닥에는 돌로 만든 표지석이 있었다. 그 곳에서 소리를 내면 전체 객석에서 잘 들린다고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소리를 질러보고 있었다. 

계단을 따라 객석 맨 위까지 올라갔다.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반원형 객석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리스 극장의 특징은 객석에서 보이는 전망까지 고려한 것이다. 과연 객석에서 보니 무대 뒤로 산 능선이 이어져서 멋진 전망을 이루고 있었다. 

극장 무대 양쪽으로는 드나드는 문과 담장의 일부가 남아 있었다. 참 거대한 시설이다. 이 시설을 건설하고 공연을 유지했던 고대 그리스의 사회시스템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극장 가까이에는 에피다우루스 고고학 박물관이 있었다. 이 도시에 있었던 아스클레피에이온, 아르테미스, 톨로의 사원과 여러 건물의 기둥, 비문 등을 잘 복원하고 전시해 놓은 곳이다. 한 쪽벽에는 제단과 기단에 사용된 조각들을 모아놓았다. 인체의 섬세한 부분은 물론이고 옷에 잡혀있는 주름까지 섬세하게 표현해 놓았다.

안으로 들어가자 사원의 기둥과 지붕 부분의 유물을 복원해 놓았다. 

비석도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작은 글씨가 빼곡하게 조각된 이 비석은 AD150~200 마루쿠스 줄리우스 아펠레스가 소화불량을 치료했던 과정과 감사의 뜻을 표현한 것이다. 이런 비석들 때문에 이 도시는 의학적으로 더 높은 명성을 얻고, 환자들은 희망을 갖게 되었을 것 같았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바로 옆에 있는 에피다우로스의 아스클레피에이온 유적지를 돌아보았다. 오늘 날로 치면 큰 대학병원이 있는 도시라고 보면 될 것 같았다. 제일 먼저 호스텔(Katagogion) 시설이 있던 곳이 나타났다. 치료와 교육을 위해서 그리스와 로마 전역에서 아픈 사람들과 가족, 순례자, 수련자 등이 모여들었다. 이 많은 방문객들을 위한 숙박 시설이다. 건물은 무너지고 기반 부분만 남아있었다. 면적이 매우 넓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규모가 매우 컸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좌측에 BC3세기부터 목욕탕이 있었던 곳이 나왔다. 로마 시대까지 계속 사용했다고 한다. 규모가 제법 컸다. 

우측으로는 기둥 일부가 남아있는 넓은 유적지가 보였다. 도시의 관문 건물인 프로필론(propylon)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식당(hestiatorion)과 공연장(Odeum) 등도 있었다고 한다. 멀리 좌측 뒤에 보이는 여러 기둥들은 아바톤(abaton) 또는 엔코이메테리온(Enkoimeterion)이라는 곳이라고 한다. 일종의 치료 시설이다. 신에게 허락을 받은 사람들이 수면을 취하는 곳이다. 치유와 관련된 꿈을 꾸도록 했다고 한다. 

더 안쪽으로는 스타디움이 있었다. 이 도시에서는 목욕, 식이요법, 약물, 운동, 공연 관람, 수술, 수면 등을 통해서 종합적으로 질병을 치료했던 것 같았다. 

버스는 다시 서쪽으로 이동했다. 고갯길을 넘어서 아르골릭만 깊숙이 자리 잡은 나프폴리오에 도착했다. 이 도시는 아르골리스 지방의 수도이다. 동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이 지역은 주로 이탈리아의 도시국가 베니스의 통치를 받았다. 근대 그리스가 독립했을 때에 처음 수도가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나프폴리오는 중세부터 중요한 항구였다. 부두에는 크고 작은 배들이 정박하고 있었다. 해안에는 멋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리스의 나폴리라고도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보우르트지(Bourtzi) 요새였다. 만 한가운데에 돌로 만들어진 성이 아름다웠다. 이 성은 베네치안 시대인 1471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한 때는 이 요새와 육지를 쇠사슬로 연결하여 출입하는 배를 통제했다고 한다. 그리스 본토를 지배했던 오스만 제국과 마찰이 많았을 것이다. 

나프폴리오 도시 뒤의 높은 산 위에는 팔라미디(Palamidi) 요새가 보였다. 이 역시 베네치안 시대에 건설되었다. 

바다로 길게 뻗은 반도의 언덕 위에는 아크로나우프플리아(Akronaufplia) 요새가 늘어서 있었다. 로마와 베네치안 시대에 건설되었다고 한다. 성벽과 시계탑이 아름다워 보였다. 바다와 언덕 위에 세워진 여러 요새를 보면서 이 곳이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나프폴리오를 출발하여 미케네 유적지로 가는 길에 식당에 들렀다. 점심 식사로는 그릭샐러드와 닭고기 수블라키를 주문했다. 수블라키는 일종의 꼬치 구이였다. 처음 맛본 그리스 전통 음식이다. 맛이 깔끔하고 좋았다.

버스는 다시 북쪽으로 이동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서 아가멤논의 무덤이라고 알려진 곳에 도착했다. 하지만 연대측정 결과 아가멤논보다 이전 시대로 나타났다. 미케네 문명 전성기의 왕이었던 아트레우스의 무덤이다. 출토되는 보물이 너무 많아서 아트레우스 보물창고라고 부른다. 거대한 돌을 장방형으로 다듬어서 쌓아 올렸다. 문으로 향하는 복도 같은 긴 공간이 먼저 나왔다. 폭은 6m, 길이는 36m 정도이다. 드로모스라고 부른다. 인간의 길고 힘든 인생 여정을 상징한다고 한다. 높은 문과 그 위에 삼각형 공간이 보였다. 과거에는 5.5m의 청동으로 만든 문이 있었다고 한다. 문 위에 아주 큰 바위가 수평들보로 놓여져 있었다. 수평들보의 무게가 120톤 정도 된다고 한다. 어떻게 올렸는지 미스테리라고 한다. 그 위에 있는 삼각형 빈 공간은 바위를 내쌓기해서 만든 것을 볼 수 있었다.  

내부로 들어갔다. 돔 모양이다. 지름이 14m, 높이가 12m라고 한다. 이 곳이 톨루스이다. 천국의 둥근 천경을 상징한다고 한다. 아늑한 천국에서 영면하기를 바랬던 것 같았다. 상당히 넓은 공간임에도 지지하는 기둥이 없었다. 고대에 지지물없이 세워진 가장 큰 볼트 구조물이라고 한다. 기술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부에는 작은 문이 있었다. 구조는 입구와 같은 형식이다. 이 안에 시신을 모셨던 곳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무덤을 만든 암석을 가까이에서 살펴보니 크고 작은 자갈들이 박혀있었다. 이 지역에는 퇴적암인 역암이 많은 것 같았다. 

가까이에 있는 미케네 유적지로 이동했다. 호메로스 서사시의 중요한 배경으로 페르세우스가 건설했고 아가멤논이 통치했다. 미케네(Mycenae) 문명이라는 이름은 이 곳 유적지에서 따온 것이다. 이 문명에는 아테나이, 필로스, 테바이, 티린스와 같은 다른 도시국가도 포함된다. 청동기 문명으로 BC1600년에서 BC1100년까지 번성했다. 1350년 경이 최전성기이다. 당시 그리스는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명권의 주변부에 불과했다. 미케네의 강점은 강력한 군사력과 무력이었다고 한다. 통치 세력은 귀족 전사 계급이었다. 무력을 이용하여 미노아 문명을 무너뜨리고, 아나톨리아 반도(현재의 튀르키에 서해안)의 무역거점 도시인 트로이도 파괴했다. 에게해는 물론 지중해도 제패했다. 전성기에 미케네의 인구는 3만명 가량이었다고 한다. 미케네 문명 시대 말기에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등 고대 그리스의 문학과 신화가 탄생한 시기로서, 고대 그리스의 최대 전성기이다. 무력 뿐 아니라 신화적 상상력과 합리적 사고력을 갖추었던 것 같다. 이는 유럽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케네 유적지는 1999년 UNESCO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되었다. 

미케네 유적지로 올라가는 길에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가이드는 사람이 누워있는 모습이 보인다고 했다. 아가멤논 왕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온다고 한다. 모양에 끌리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그리스나 한국이나 똑같다. 

앞에 미케네 요새와 궁전 유적이 보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크게 인상적이지 않았다. 3000년 이전 청동기 시대의 유적임을 감안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스 사람들은 키클로프스(Cyclopes)의 성채라고도 부른다. 15톤 가량되는 바위를 쌓아서 만든 성채이기 때문에 외눈박이 거인 괴물 키클로프스의 괴력 정도는 되어야 쌓을 수 있는 엄청난 성이라는 표현이다. 코끼리를 이용해서 축성했다는 가설도 있다. 

요새 가까이에서 우측 길을 따라 오르막을 따라가자 사자의 문이 나타났다. BC1350년 경 건축물이다. 큰 바위로 문을 만들고, 수평들보 위에 두 마리 사자가 마주보는 모습을 부조로 새겨 놓았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기념비적인 부조이다. 사자 머리는 금속으로 만들었는데 도난당했다고 한다. 사자는 권력과 권위의 상징이다. 대외적으로 미케네의 힘을 과시하려고 했던 것 같았다. 사자의 문은 바위 성벽으로 이어져 있었다. 바위 하나 하나의 크기가 대단했다. 이 역시 역암이었다.  

성문을 통과하자 오른 쪽에 수갱분묘가 보였다. 미케네 왕족(왕, 왕비, 왕족)의 무덤이다. 거대한 석판을 원형으로 이어서 이중 성벽을 만들어 놓았다. 도굴을 방지하려는 것이다. 무덤 외부에도 성을 쌓아서 보호했다. 독일의 하인리히 슐라이만은 이 곳에서 많은 유물을 발굴했다. 이 때 어마어마한 양의 황금 유물이 출토되었다. 아테네에 있는 국립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된 데드마스크인 황금가면도 이 곳에서 나왔다. 그 밖에도 왕관, 금속 용기, 단검, 동검, 상아와 도기 유물도 출토되었다. 호메로스가 황금의 도시라고 묘사했던 바로 그 도시이다.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제일 위로 올라갔다. 건물의 기단부만이 이어져 있었다. 언덕 제일 위에는 2층 구조의 궁전이 있었다고 한다. 궁전 중앙에는 큰 중정이 있었으며, 메가론이라는 넓은 방이 있었다. 메가론은 장방형이며, 현관 다음에 전실이 있고 그 뒤로 커다란 주실이 있었다. 사원, 욕실 등도 발견되었다. 왕과 왕비 신하들의 거처도 궁전에 있었다. 이 궁전에서 아가멤논은 친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치고 트로이로 출정하고, 돌아온 뒤에는 아내 클리템네스트라와 정부에 의해서 살해당한다. 그러자 또 다른 딸 엘렉트라와 아들 오레스테스는 어머니와 정부를 살해하여 아버지의 복수를 한다는 비극의 배경이다. 멀리에는 조금 전에 다녀온 나프플리오 항구가 보였다. 이 언덕은 바다로 침입하는 외적을 감시할 수 있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인 셈이다. 

계곡 쪽에는 가파른 사면에 바위를 쌓아서 만든 요새의 성벽을 잘 볼 수 있었다. 

성이 위험할 때 빠져나가는 작은 문도 있었다. 

미케네에는 비밀 수로가 있었다. 포위가 되더라도 물을 자급할 수 있는 셈이다. 돌을 삼각형 모양으로 쌓아서 통로 공간을 만들었다. 

비밀 수로는 지하로 이어져 있었다. 경사진 통로를 따라 돌계단이 이어졌다. 수직으로 18m 깊이라고 한다. 성벽 외부에 있는 샘과 지하로 연결해 놓은 것이다. 지하 통로 끝에는 물이 고인 물탱크(cistern)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물이 고여있지는 않았다.  

미케네 요새와 궁전을 둘러보고 천천히 내려왔다. 요새 주위에는 구릉이 이어졌다. 그 위에는 올리브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한 시절을 호령하던 미케네 문명은 철기 문명을 가진 도리아계 그리스 민족에 의해 BC1200년 경에 멸망했다. 한편, 지진이나 기후변화 때문에 무너졌다는 가설도 있다고 한다. 

미케네 관광을 마치자 가이드는 그리스 도자기 세미나를 하는 곳으로 버스를 이동시켰다. 상당히 넓은 전시장에서 그리스 도자기 제작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장인이 실제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희망자는 제품을 구입할 수 있었다. 도자기 이외에도 다양한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상당히 세련된 상술로 느껴졌다.  

긴 하루를 마치고 올림프스에 도착했다. 호텔은 한적한 농가 사이에 있었다. 풀장 옆에 있는 식당에서 부폐식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 내려다 본 식당 모습이다. 

내일을 기원하면 휴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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