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8
오늘 투어 시작은 9시이다. 우리나라 여행 패키지에 비해서 여유가 있는 편이다. 패키지에 포함된 호텔이나 식당 수준은 비슷한 것 같았다. 조식을 먹은 후 호텔 주변을 둘러 보았다.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다.
올림피아 유적지로 이동했다. 펠로폰네소스 반도 서쪽에 있다. 공식 이름은 고대 올림피아(Archaia Olympia)이다. 비슷한 이름 때문에 이 곳과 혼동하기 쉬운 곳으로 올림프스 산이 있다. 이 산은 고대 그리스의 12 신이 산다는 곳이며, 그리스 북쪽에 있다. 고대 올림피아는 고대 그리스의 성스러운 장소(Altis)이다. 제우스신과 함께 여러 신을 숭배한 곳이다. 안내판에는 이 곳에 있었던 제우스 신전과 제우스상을 내세우고 있었다.
이 곳에서는 BC776년에서 AD393년까지 4년마다 고대 올림픽 게임이 열렸다. 지금으로부터 2800년 가량 전인 청동기 시대에 시작된 것이다. 참 까마득하다. 이 무렵 우리나라는 고조선 시대였고, 중국은 춘추전국 시대였다. 기록과 유물도 별로 남아있지 않은 시대이다. 그리스 전역에는 비슷한 경기가 많았지만 이 곳의 올림피아 제전 경기가 규모나 지속성에서 제일이었다. 고대 그리스인에게는 신체적 기량을 뽐내고 제우스 신에게 경의를 표하는 기회였다. 사회적으로는 여러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평화롭게 교류하고 서로의 힘을 평가하는 행사였다. 도시국가로 이루어진 그리스가 올림픽을 계기로 종교적, 정치적 동질성을 다져 나갈 수 있었던 것 같았다. BC 146년부터 그리스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로마시대에도 올림픽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선언한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는 고대 올림픽을 이교의 잔재로 여겨 폐지시켰다. 다신교를 받아 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 후 쿠베르탱이 근대 올림픽을 설립할 때까지 올림픽은 중단되었다.
올림피아 유적지 배치도 앞에 섰다. 이 곳에는 760개가 넘는 주요 유적이 있다고 한다. 대단한 곳이다. 중앙에 있는 사각형으로 구획된 곳이 신성한 지역(Altis)으로 제우스 신전, 헤라 신전 등이 자리잡고 있다. 좌측에는 올림픽 경기가 열렸던 스타디움이 길게 뻗어 있다. 아래 쪽 가운데에 등고선이 둥글게 표시된 곳은 제우스 신의 아버지 크로노스의 산이다. 우측에는 회랑으로 둘러싸인 훈련장, 올림픽 참가 선수를 위한 숙박 시설, 목욕탕, 제우스 신상을 만든 파이디아스의 작업장과 바실리카 등이 있다. 중앙 윗쪽에는 관청(Bouleuterion)과 남쪽에서 들어오는 주요 통로 건물(South Stoa)이 자리하고 있다. 배치도 아래 쪽에 당시 모습을 복원한 그림이 있어서 이해하기 쉬웠다.
우리는 크로노스 산의 우측에 있는 길을 따라 유적지로 들어갔다. 제일 먼저 길 오른쪽에 로마 시대 목욕탕(Kronios baths or north baths) 유적이 나타났다. 그 전에 있었던 그리스 목욕탕 자리에 만들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름다운 바다의 요정 네레이드(Nereid)와 남자 인어의 모습을 한 바다의 신 트리튼(Triton)의 모자이크가 발견된 곳이다. 트리튼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이다.
좌측에 김나시움(gymnasium)이 보였다. BC2세기에 만들었다. 긴 직사각형 모양으로 네면이 모두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낮은 기둥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육상과 5종 경기 선수들이 훈련을 하던 곳이다. 고대 올림픽 스타디움과 같은 규격이었다고 한다. 서쪽에는 선수들의 숙소가 있었다. 바로 옆을 흐르는 클라데오스 강의 범람으로 침식되어 사라졌다고 한다.
김나시움 다음에는 팔라에스트라 (Palaestra)가 보였다. 당시에는 도리아식 암석 기둥 72개로 이루어진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많은 기둥이 남아 있었다. 권투, 레슬링, 높이뛰기 선수들이 훈련했던 곳이다. 훈련을 준비하는데 필요한 작은 방들도 있었다. 참가 선수들의 훈련 시설이 잘 마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경쟁이 치열했던 것 같았다.
길을 따라 더 안으로 들어가자 페이디아스의 작업실(The Workshop of Pheidas)이 있었다. 이 곳에서 조각도구와 주형, 페이디아스라는 이름이 새겨진 컵 등이 출토되었다. 페이디아스와 그의 조수들이 제우스 신상을 제작을 했던 곳이다. 페이디아스는 고대 그리스 최고의 조각가이자 건축가였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재건했고 그 신전 안의 아테나 여신을 비롯한 여러 신들의 상을 제작했다. 고대 올림피아는 경쟁 도시 아테네를 능가하려는 야심을 가졌다. 당시 가장 뛰어난 조각가이자 건축가인 페이디아스에게 커다란 규모의 제우스 신상의 제작을 의뢰하게 되었다.
BC2세기가 되자 이곳은 종교적인 참배 장소로 바뀌었다. 페이디아스도 죽고 더 이상 작업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AD435~451이 되자 이 자리에는 비잔틴 양식의 성당이 세워졌다. 페이디아스의 작업실은 그 성당의 일부분이 되었다. 이 성당은 AD551년에 발생한 큰 지진으로 무너졌다. 성당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여러 역사가 중첩된 현장이다.
남쪽으로는 레오니다이온(Leonidaion )의 터가 남아있었다. BC330년 경에 세워졌다. 이 건물의 설계와 비용을 지원한 낙소스 섬 출신 건축가 레오니다스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규모가 이 곳 유적지에서 가장 큰 건물이다. 정사각형 모양인데 한면이 80m 정도 크기이다. 올림픽 참가 선수들을 위한 숙소였다고 한다. 참가 선수들의 수가 매우 많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숙소의 중앙 정원에는 네 잎 클로버 모양의 연못과 섬도 있었다. 제법 정성스럽게 만든 숙소였었던 것 같다.
레오니다이온을 지나자 우측에 제우스 신전 유적이 보였다. BC456년에 완공되었다. 신전은 무너지고 신전을 이루던 암석들이 넓게 흩어져 있었다. 신전은 장방형이었는데 폭은 거의 30m, 길이는 70m 가량이고, 높이는 21m 정도였다고 한다. 신전의 앞 뒤에 각각 6개의 기둥이 있었고, 양쪽 측면에는 각각 13개의 도리아식 기둥이 서 있었다. 복원한 듯한 큰 기둥 하나만이 제대로 서 있었다. 무너진 돌 유적만으로 원래의 모습을 상상해내는 것은 어려웠다.
남아있는 기둥 주변에는 신전의 기둥 조각들이 쓰러져 있었다. 기둥은 돌을 일정한 두께로 자르고 옆 부분을 다듬은 다음 쌓아서 만들었던 것 같다. 과거의 영광은 오랜 시간 속에 묻혀 있었다.
제우스 신전의 모습을 복원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아래 그림처럼 두꺼운 기둥이 건물을 둘러싸고 있고 위에는 지붕을 얹었다. 안에 있는 실내 공간에는 커다란 제우스 신의 형상이 있었다고 한다. 참 웅장하고 아름다웠을 것이다.
제우스신전의 남쪽에는 보울레이테리온 ( Bouleyterion) 터가 있었다. 올림픽위원회를 위한 건물로서 관련된 사무를 보던 곳이다. 경기 전에 선수와 심판이 선서를 했던 곳이기도 하다. 고대 올림픽 경기를 주관한 곳인 셈이다.
제우스 신전을 지나자 삼각형 모양 의 대리석 기둥이 서 있었다. 우리 가이드는 계속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 기둥 위에 승리의 여신 니케의 동상이 서 있었다. 기둥의 높이만 9m이고 여신상까지 합하면 12m라고 한다. 제우스신에게 헌정된 것이다. BC421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승리한 메시니아인과 나우팍티아인이 올림피아의 제우스신에게 바친 봉헌물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전리품의 10%를 제우스신에게 바쳤다. 파에오니오스(Paeonios)의 작품이다. 승리의 여신 실물은 올림피아 고고학박물관 안에 있다. 유적지를 돌아본 후 관람할 것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아테네 주도의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 주도의 펠로폰네소스 동맹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다.
제우스 신전과 스타디움 사이에는 에초 스토아(Echo Stoa) 건물의 터가 길게 남아있었다. 길이가 100m에 이르는 긴 건물이었다고 한다. 제우스 신전이 있는 성스러운 지역과 스타디움을 구분하는 경계이다. 경기 때문에 소란스러운 스타디움과 성스러운 지역을 구분하려고 했던 것 같다.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작가와 예술가들은 작품을 가지고 고대 올림피아로 몰려들었다. 그리스 전역에서 온 사람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선보일 절호의 기회였을 것이다. 이들의 작품은 이 스토아 내에 전시되었다.
스토아 앞에는 큰 기둥을 받치던 기반석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 중에는 이집트의 왕 프톨레미 II세와 왕비가 BC3세기에 세운 동상이 서 있었던 기둥도 보였다. 알렉산더 대왕의 장수였던 프톨레미는 대왕의 사후에 이집트에 프톨레미 왕조를 세웠다. 프톨레미 II세는 그의 아들이다. 그는 한 때 지중해 동부와 그 주변 지역(오늘 날의 그리스, 튀르키에,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이스라엘, 이집트, 리비아 일부)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다. 당시에는 그리스도 그의 지배를 받았다.
경기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통과하는 아치(크립테 스토아)가 보였다. 이어지는 길 좌측에는 자네스(Zanes)가 늘어서 있었다. 16개의 제우스신 동상들이다. 지금은 기반석만 남아 있었다. 올림픽 시합 중에 부정을 저지른 선수들에게 부과했던 벌금으로 세운 것이다. 동상마다 부정을 저지른 선수와 출신지역을 써 놓았다고 한다. 당시 시합은 매우 격렬했었다고 한다. 이기면 명예를 얻었지만, 지는 경우 불명예를 각오해야 했다. 격투 경기에서 진 사람은 사망하기도 했다. 이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부정행위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상당한 벌금과 함께 오랜 시간 동안 자신과 출신 도시국가의 불명예를 각오해야 했다. 모든 선수들은 스타디움으로 가는 길에 자네스 앞을 지나야 했다. 페어플레이를 다짐했을 것 같다.
선수들의 공식 입장 문인 아치 모양의 크립테 스토아(Krypte Stoa)를 통과하니 경기장(스타디움)이 나왔다. 눈 앞에 트랙이 길게 펼쳐져 있었다. 길이는 192.27m, 폭은 28.50m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 길이의 단위 스타디온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1스타디온은 600피트(약 180m)이다. 관중은 아래 사진의 좌측 언덕에 자리를 잡았다. 수용 가능한 관중의 수는 45000명 정도였다. 트랙의 우측 사면 중간에 보이는 돌로 만든 무대는 심판을 위한 자리이다. 당시 경기에 참석하고 관람하는 것은 남성 자유민의 특권이었다. 레슬링과 격투기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은 나체로 경기에 임했다. 여성들은 위한 경기는 따로 열렸다고 한다. 육상 경기의 출발 지점은 돌로 표시가 되어 있었다. 나도 출발 자세를 취해보았다.
스타디움을 둘러보고 다시 크립테 스토아를 통과해서 성스러운 지역으로 되돌아 왔다.
먼저 메트룬(Metroon)이 있었다. BC4세기에 세운 것이다. 직사각형 모양으로 가로에 기둥 6개, 세로로 기둥 11개가 서 있었다고 한다. 신들의 어머니 레아(Rhea)나 키베레(Kybele)에게 헌정된 곳이다. 레아는 제우스를 비롯한 여러 신을 낳은 신이다. 올림피아에서 제우스 신의 어머니를 빠뜨릴리가 없을 것 같았다.
조금 더 나아가자 헤라의 신전(the Temple of Hera)이 보였다. 기둥 3개가 서 있었다. 올림피아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사원이다. BC580년에 세워졌다. 처음에는 제우스와 헤라의 통합 신전이었다. 나중에 제우스 신전을 따로 건립했다. 헤라는 제우스의 동생이자 부인으로 올림프스산과 12신의 여왕이다. 신전 앞에는 지금도 올림픽 성화를 채화하는 제단이 있었다. 아래 사진의 중앙부에 있는 돌로 둘러싸인 부분이다. 흰색 옷을 입은 그리스 여인들이 성화 채취를 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신성한 곳이다. 여기까지 둘러보니 제우스가 이 곳의 주인공임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아버지 크로노스는 가장 높은 지형인 산에 헌정되어 있고, 어머니는 메트룬 신전, 아내는 헤라의 신전으로 모셔져 있다. 물론 제우스의 신전이 가장 중앙에, 가장 크게 모셔져 있다.
헤라 신전 옆에는 님파이온(Nymphaion) 터가 있었다.
님프 또는 물의 여신의 집이라는 뜻이다. 올림픽에 참가한 대중에게 물을 제공해주는 곳이다. 샘물이 여러 곳에서 수평으로 뿜어져 나오는 곳이었다. 물은 로마식 수도교 시설을 통해서 공급되었다고 한다. 헤로데스 아티쿠스(Herodes Atticus)와 그의 부인 레길라(Regilla)가 기증했다. 아티쿠스는 아테네의 수사학자이자 로마 제국의 원로원 의원이었다. 로마의 아루렐리우스 황제에게 수사학을 가르친 사람이라고 한다. 분수 뒤에는 반원으로 세워진 2층 파사드가 높게 서 있었다. 파사드에는 기증자와 부인 이외에도 로마 시대 황제들인 안토니누스 파이우스, 하드리안, 마르쿠스 아우레일리우스와 그 가족들의 동상이 서 있었다. 아래 그림은 원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헤라 신전 다음에는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필리페이온(the Philippeion)의 신전이 있었다. BC335년 건립한 것이다. BC338년에 아테네는 마케도니아에 정복당하고 헬레니즘 시대로 접어들었다. 신전은 비교적 온전한 모양의 톨로스(Tholos) 구조였다. 위에서 보면 원형으로 되어 있으며, 바깥쪽에 18개의 이오니아식 기둥이 둥글게 서 있었다. 지금은 3개만이 제대로 서 있었다. 그 안쪽에는 원형 벽이 있었다고 한다. 이 벽에는 코린트식 기둥이 9개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신전에는 필립II세와 그 가족, 알렉산더 대왕, 올림피아스, 아민타스 3세, 유리디스 1세의 동상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마케도니아 필립II세와 알렉산더 대왕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었다. 새로 정복한 그리스 지역을 정신적으로도 지배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헤라 신전과 제우스 신전 사이에는 반신화적인 왕 펠롭스의 무덤 터인 펠로피안(Pelopion)도 남아 있었다.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펠롭스 왕은 트로이 전쟁이 일어났을 때 도시국가의 왕이었던 아가멤논과 메네라우스의 조상이다.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이름도 펠롭스에서 비롯된 것이다. 헤라 신전에서 크로노스산을 바라보니 산기슭에 재물보관소(Treasuries)가 늘어서 있었다. 사원 모양의 작은 건물들이다. 신에게 바쳐진 귀중품을 보관하던 곳이다.
유적지를 돌아본 후 올림피아 고고학 박물관을 관람했다. 이 곳에서 출토된 엄청난 양의 유물이 보관 전시되어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전시물 몇가지만 소개하였다. 먼저 동방에서 전래한 전설적 동물인 그리핀을 볼 수 있었다. 청동으로 만들었다. 몸과 꼬리, 뒷다리는 사자이고, 머리와 날개는 독수리인 동물이다. 땅과 하늘에서 가장 강한 동물을 조합해 놓았다. 어디에서나 무적인 존재이다. 그리핀은 고대에서 중세까지 강력하고 위엄있는 동물로 여겨졌다. 신적인 능력과 소중한 보물, 귀중품을 지켜주는 존재이기도 했다. 이 곳의 그리핀은 암컷이며, 배 아래에 있는 새끼를 돌보고 있는 모습이다. 무서운 괴물을 새끼를 돌보는 따뜻한 모습으로 재해석했다고 한다. BC630-620년 경에 코린트에서 만든 고대 헬레니즘의 뛰어난 예술품으로 손꼽힌다. 이 지역의 신성함과 소중한 보물을 보호해달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유적지에서 보았던 삼각형 기둥 위에 서 있었던 승리의 여신 니케의 동상을 만났다. 그리스 최초의 니케 조각상이다. 1875년 독일 발굴팀이 유적지의 삼각형 기둥 주변에서 찾아냈다. 대리석으로 만든 정교한 모습이다. 신체와 얇은 천의 주름까지 실물같았다. 안타깝게도 날개와 머리, 팔의 일부는 없어졌다.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있으며 뒤에 있는 긴 망토가 균형을 잡고 있다. 뒷 벽면에 온전한 모습을 그림으로 보여주었다. 니케는 올림프스 산에서 출발해서 이 곳으로 날아온 것이라고 한다. 하늘에서 내려와서 군사적 승리를 선언하는 모습이다. 오른쪽 발로 독수리의 머리를 밟고 있다. 이 상은 제우스에게 바쳐진 것이다. BC5세기 조각가인 파이오니오스(Paionios)의 작품이다. 그는 이 곳의 제우스 신상을 만드는 과정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제우스 신전 동쪽의 파사드가 흥미로웠다. 중앙에는 제우스 신이 서 있었다. 아쉽게 그의 머리 부분은 분실되었다. 그의 우측에는 오이노마오스, 좌측에는 펠롭스가 서 있다. 펠롭스 옆에 있는 여인은 오이노마오스의 딸인 히포다메이아이다. 양쪽에 전차경주에 사용할 네 마리 말이 끄는 전차가 보였다. 관련된 신화 이야기는 여러 버전이 있다.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피사의 왕이었던 오이노마오스는 자신의 딸, 히포다메이아와 결혼하는 남자에게 살해 당할 것이라는 경고를 듣게 되었다. 그는 자신과 전차 시합을 해서 이기는 자에게 딸과 결혼을 허락한다고 발표하였다. 많은 훌륭한 젊은이들이 도전했지만 그를 이길 수 없었다. 히포다메이아와 서로 사랑하게 된 펠롭스는 포세이돈이 준 말이 끄는 전차와 히포다메이이아의 도움으로 경기에서 이길 수 있었다. 이 패배로 오이노마오스는 죽게되고 펠롭스는 피사의 왕이 되어 이 반도의 주인이 되었다. 그래서 반도의 이름이 펠로폰네소스가 되었다. 한편 펠롭스는 오이노마오스 왕의 죽음을 기리고 자신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올림피아에서 올림픽 게임을 설립했다고 한다. 이 곳 제우스 신전의 정면 파사드에 들어갈만한 이야기이다.
제우스 신전의 서쪽 파사드에 있는 조각품도 인상적이었다. 전체적으로 라피스족과 켄타우로스족의 전투 모습을 보여준다. 라피스족 왕은 자신의 결혼식에 켄타우로스족을 초대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켄타우로스족은 상반신은 사람이고 하반신은 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들은 난폭하고 향락과 폭력을 좋아했다. 피로연 도중에 켄타우로스족은 만취하여 라피스족 여인들을 강간하려고 했다. 중앙에는 아폴로신이 차분하게 서 있다. 그는 오른 팔을 뻗어서 평화와 질서를 명령하는 모습이다. 그의 우측에는 라피스족의 왕인 페리토스가 자신의 신부를 붙잡고 있는 켄타우르 유리티오나스를 공격하고 있다. 아폴로 신의 좌측에는 테세우스가 라피스족 여인을 차지하려는 켄타우로스를 공격하려는 모습이라고 한다. 일부분은 손실되어 알아보기 어려웠다. 라피스족과 켄타우로스족 사이의 싸움은 그리스인과 야만인 사이의 갈등을 의미한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스포츠를 문명인의 상징으로 생각했다. 스포츠 제전인 올림피아에서 야만인과의 차이를 부각시키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제우스 신전에 있었던 제우스 신의 형상을 복원한 그림도 눈길을 끌었다. 제우스 신상은 높이가 12.4m에 이르렀다고 한다. BC435년에 페이디아스가 제작하였다. 그는 삼나무로 의자를 만들고 그 위에 흑단, 상아, 금, 보석 등으로 장식하여 옥좌를 만들었다. 제우스상은 나무로 틀을 만든 다음 그 위에 상아판과 금 패널을 붙여서 완성하였다. 제우스 상을 보았던 당시 사람들은 강렬한 인상과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이 제우스 상은 AD6세기 경에 파괴되고 분실되었다. 다행히도 이 지역의 도시국가 엘리스(Elis)의 로마시대 동전에 올림피아의 제우스의 상이 새겨져 있어서 원래의 모양을 알 수 있었다. 머리에는 월계관을 쓰고, 오른 손에는 승리의 여신 니케, 왼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이 지팡이는 천둥과 번개를 내리칠 수 있는 것일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3000년에서 2000년 전에 세워진 올림피아의 유적 관람과 고대 올림픽 행사 이야기에 큰 감동을 받았다. 청동기 시대에 이처럼 훌륭한 건물과 예술 작품, 그리고 전 그리스적인 대규모 종교적 체육행사를 조직했던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점심 식사를 위해서 식당으로 이동했다. 그리스 음식인 기로스를 주문했다. 나무판 위에 돼지고기 구이, 피타빵, 감자튀김, 야채, 자지키(하얀색 소스)가 올려져서 나왔다.
건미는 파스타 수블라키를 시켰다. 역시 나무 그릇에 담겨 나왔다. 그리스에서는 올리브 나무로 만든 그릇을 많이 사용하는 것 같았다. 어쩐지 편안하게 느껴졌다.
이제 델파이까지 230여 km나 되는 먼 길을 가야 했다. 중간에 펠로폰네소스 반도와 본토를 잇는 큰 다리를 건넜다. 양쪽 지명을 따서 리오-안티리오 다리(Charilaos Triloupis Rio - Antirrio Bridge) 또는 처음 아이디어를 낸 사람을 따서 하릴라오스 트리쿠피스 다리라고 부른다. 총 길이 2,882m로 세계 최장 사장교라고 한다. 2004년 8월 7일에 완공되었다. 아테네올림픽 개막 1주 전이었다. 덕분에 성화를 든 사람이 최초로 이 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이 다리가 있는 코린토스만은 지진이 자주 발생하고, 만은 매년 30mm씩 멀어지는 불안정한 곳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 다리는 지각 변동에 잘 적응하는 특별한 공법을 사용해야 했다고 한다. 규모와 기술에서 매우 흥미로운 다리이다.
다리를 건너자 버스는 휴게소에 들렀다. 안전 운행을 위해서 일정한 시간마다 휴식을 해야하는 것 같았다. 이 곳에는 달달한 디저트가 아주 다양했다.
버스는 다시 델파이를 향해서 출발했다. 갑자기 버스 안 모든 휴대전화에서 비상 사태를 알리는 경보 소리가 들렸다. 산불 경보였다. 불안한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 보았다. 다행히 코린토스만 건너편 산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기후변화 때문에 전 세계에서 산불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스도 산불로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
해안을 따라서 이따끔씩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한참을 지나자 가이드가 올리브 바다라고 소개했다. 과연 올리브 나무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장관이다.
버스는 한참동안 비탈길을 따라 좌우로 커브를 돌았다. 드디어 델파이에 도착했다. 도시는 산 비탈에 자리잡고 있었다. 덕분에 호텔 방에서 보이는 전망이 훌륭했다.
델파이 시가지를 걸어 보았다. 오래된 도시여서 길이 좁고 주차장도 별로 없는 듯 했다.
호텔 길건너편 주점에서 그리스의 고유의 술 우조(ouzo)를 마셨다. 이 술은 그리스와 사이프러스에서만 만든다고 한다. 와인을 만들고 남은 재료를 사용한다. 투명하고 독한 술이었다. 향이 강하고 단맛도 있었다. 좋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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