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29
태쉬를 떠나 인터라켄으로 가는 날이다. 최단 거리는 자동차 열차(car train)를 이용하여 칸더슈텍 터널을 지나는 길이다. 차를 기차에 싣고 가는 터널 구간이 있다고 한다. 비용은 25에서 30프랑 정도를 지불하면 된다. 주말에는 조금 더 비싸고, 예약을 하면 약간 저렴하다고 한다. 120여 km 거리로 2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다른 방법은 우회하는 것이다. 나는 그림젤고개(Grimsel Pass)를 넘는 우회 길을 선택했다. 152km 거리인데 3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터널을 지나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한편 알프스의 높은 고개를 넘어보고 싶기도 했다.
태쉬를 출발하여 30여 km를 북쪽으로 달리니 19번 도로가 나왔다. 깊은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동북쪽으로 진행했다. 길은 강을 따라 계곡으로 이어져 있었다. 산자락에는 가끔씩 예쁜 작은 마을들이 나타났다. 멋진 드라이브 코스이다. 한참을 달리자 유네스코 세계 유산 표시가 계속 나타났다. 궁금해서 한번 들러보기로 했다. 피에쉬(Fiesch)라는 작은 마을로 들어갔다. 피에쉬역에 에기스호른(Eggishorn)이라는 높은 봉우리로 올라가는 곤돌라가 있었다. 정상에서 알레취 빙하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유럽 본토의 최대 빙하이다.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지 곤돌라 규모가 제법 컸다. 다행히 사람들이 붐비지는 않았다.
곤돌라에 패러글라이딩 장비를 가진 스위스 사람이 동승했다. 건미가 독일어로 대화를 했다. 64세인데 19년째 취미로 하고 있다고 한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휴가를 내고 왔단다. 오늘 2시간을 활공할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본인은 60대라서 2시간이지만 젊은 사람들은 대개 3시간 이상 활공한다고 한다. 두세 시간을 새처럼 하늘을 나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나는 패러글라이딩을 한번 타 보았는데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10분 정도 활공했었다. 취미 생활의 수준이 나와는 너무 다른 것 같다. 알프스의 엄청난 산악은 취미 생활의 규모도 확장시키는 것 같다. 즐거운 시간을 갖기를 바랬다.
중간에 내려서 곤돌라를 갈아타고 정상으로 올라갔다. 멀리 알프스 산맥이 펼쳐져 있고 계곡에 있는 마을은 희미하게 보였다. 산 중턱에는 호텔과 레스토랑이 있는 집들과 트레일들이 뚜렷하게 보였다.
마침내 에기스호른 정상에 도착했다. 해발 2869m이다. 산 능선을 따라 트레일이 이어져 있었다. 오늘도 날씨는 너무 쾌청하다. 길을 따라 전망대에 이르니 알레취 빙하가 내려다 보였다. 빙하 중간에는 구름의 그림자가 검게 보였다. 빙하에는 희고 검은 줄이 띠처럼 길게 이어져 있었다. 빙하가 흐르는 방향을 나타낸다. 20km에 이르는 긴 빙하이다.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이기도 하다. 정말 멋진 광경이다. 멀리 빙하가 시작되는 곳에 융프라우, 아이거 등의 유명한 높은 봉우리들이 작게 보였다.
약간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자 빙하로 침식된 날카로운 봉우리들이 줄지어 보였다. 해발 3000m 내외의 고봉들이다. 정상 근처 움푹한 곳에는 하얀 빙하가 쌓여 있다. 겨울철 눈이 많이 쌓이면 눌려서 빙하로 발달하는 곳이다.
조금 더 오른쪽에는 깊은 계곡이 보였다. 그 계곡을 따라 다른 빙하가 흐르는 것이 보였다.
알레취 빙하의 하류 쪽 방향도 살펴보았다. 이어지는 뾰족한 능선 너머에는 멀리 알프스의 고봉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우리가 다녀온 체르마트와 마테호른도 저 곳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빙하와 알프스 산맥을 즐긴 후 곤돌라 탑승장으로 이동했다. 내려오는 길에 깊은 계곡을 내려다 보니 가슴이 후련해졌다.
그림젤패스를 향해서 출발했다. 오베르곰스라는 마을을 지나서 조금 달리니 본격적으로 오르막 길이 시작되었다.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그림젤패스 고개길이 눈 앞에 나타났다. 엄청난 모습이다. 저 길을 올라가야 한다.
급커브를 따라 회전을 거듭하여 마침내 그림젤패스 정상에 도착했다. 해발 2164m이다. 스위스에서 10번째로 높은 고개이다. 정상에는 모터바이크를 탄 남녀의 모습을 만들어 놓았다. 이 곳은 유명한 모터바이크 코스이자 자전거 코스이기도 하다.
정상에는 호수가 여러 개 있었다. 빙하호수이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가니 아름답고 푸른 호수가 나타났다. 토텐제(Totensee)이다. 호수를 한바퀴 도는 둘레길도 있다고 한다. 2.3km 정도이다. 호수 주변에는 호텔도 여러 개 있었다.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출발했다.
고개를 내려와서 한참을 달리자 아레 협곡(Aareschlucht) 간판이 보였다. 길이가 1.4km이고 깊이는 200m나 되는 골짜기라고 한다. 경치가 좋다는 평이 많아서 오늘 방문할 목적지 중 하나로 꼽았던 곳이다. 산이 높고 멋지면 협곡도 깊고 아름다운 법이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 완만한 계단을 따라 협곡으로 내려갔다. 협곡에는 걷기 편한 데크 길이 잘 마련되어 있었다. 뒤돌아보니 좁은 협곡이 멀리 보이는 산과 하늘과 대비된다.
협곡은 좁고 깊었다. 협곡을 이루는 바위는 규모가 위압적이다. 형태도 기기묘묘하다. 안으로 들어가면서 서늘한 냉기가 느껴졌다. 마치 지하 동굴에 들어온 느낌이다. 더운 여름에 오면 훌륭한 피서지일 것 같다.
이 지역의 암석은 석회암이라고 한다. 약 1억3천만년에서 1억6천만년 전(중생대)에 깊은 바다 속에 퇴적물로 쌓인 후 눌리고 굳어서 암석이 된 것이다. 수천만년 전 아프리카판과 유라시아판이 충돌하면서 알프스 산맥이 만들어질 때 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지구 규모에서 일어나는 일을 인간의 시간과 공간 개념으로 가늠하기 어렵다.
협곡은 점점 더 좁아지고, 터널이 나타났다. 자연 동굴이 아니라 사람들이 뚫은 것이다. 협곡이 좁아서 길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2차대전 시에는 군사용 요새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협곡이 좁아지면서 양측 벽의 곡면이 서로 닿을 듯 마주하고 있다. 깎여 나간 모양이 예술적이다. 석회암의 층리가 마치 주름처럼 아름다움을 배가시켰다.
녹색 수목은 또 다른 장식 효과를 더했다. 아름다움에 감탄을 하면서 걸었다.
탄성을 내면서 걷다보니 협곡의 끝에 도달했다. 조금 더 가면 협곡 서쪽 입구 주차장이 나온다고 한다. 우리는 다시 되돌아 왔다.
오면서 다시 보아도 정말 멋진 협곡이다.
협곡 동쪽 입구로 되돌아와서 마주 보이는 산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지나온 그림젤패스에서 부터 이어지는 계곡이다. U자곡의 웅장한 모습이다.
숙소가 있는 댈리겐을 향해 달렸다. 이 마을은 인터라켄 서쪽에 있는 튠호수 옆에 있다고 한다. 인터라켄의 식품점 알디 스위스에 들러서 장을 보았다. 오늘부터 4일 동안은 에어비앤비에서 구한 숙소를 사용한다.
댈리겐(Daerligen)은 작은 마을이었다. 숙소는 2층이다. 거실, 주방, 식당, 침실이 있어서 편안하다. 창문으로 바라본 마을은 평화로웠다.
건미가 맛있는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모처럼 맛보는 한식 성찬이다. 와인을 곁들여 만찬을 즐겼다.
스위스: 피르스트, 쉬니게 플라테 (11) | 2024.11.08 |
---|---|
스위스: 융프라우, 맨리헨, 뱅겐 (9) | 2024.11.07 |
스위스: 체르마트, 고르너그라트, 고르너 협곡 (6) | 2024.11.02 |
스위스: 로잔 라보 포도원 테라스, 체르마트 (8) | 2024.11.01 |
스위스: 베른, 로잔 (9) | 2024.1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