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22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여유있게 출발했다. 호텔 직원이 무례한 행동을 해서 건미가 항의를 하고 사과를 받았다. 라인강을 따라서 북쪽으로 이동했다. 멋진 드라이브 코스이다. 처음에는 남한강변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고성과 중세 건물들이 강과 어우러져서 색다른 아름다운 경관이 이어졌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로렐라이언덕이다. 우리나라에는 가곡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평판에 비해 별로 볼 것이 없다는 말도 들었다. 라인강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올려다보니 제법 가파른 절벽이다. 높이가 132m라고 한다. 길 건너편 좌측으로 가니 전망대로 가는 길이 나왔다.
30분 가량을 올라가니 마침내 전망대가 나왔다. 언덕 저 아래에 구비쳐 흐르는 라인강이 보였다. 강 중앙에는 모래언덕이 길게 이어져 있고, 멀리 보이는 언덕 중턱에는 오래된 성이 보였다. 강변을 따라서 마을이 이어져 있었다. 라인강은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물자 수송로이다. 특히 로렐라이 언덕을 포함한 중류 지역은 협곡이어서 오가는 배를 통제하기 쉬웠다. 그만큼 중요성이 큰 탓에 이 지역에는 60여개의 마을과 40여개의 성이 있다고 한다.
로렐라이 전망대에서 보니 강 주변은 낮았지만 나머지 부분은 모두 높이가 상당한 평평한 대지이다. 대지에는 농지가 이어져 있다. 로렐라이는 강에서 볼 때만 언덕인 셈이다. 전망대에는 군데 군데 작은 설명 패널들이 있었다. 이 지역의 암석에 대한 설명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제목을 제외하면 독일어로 씌여 있었다. 인터넷 자료를 찾아보니 이 곳의 지층은 약 4억년 전(고생대 데본기)에 해저에서 퇴적되었으며 주로 점판암이다. 점판암은 약한 변성작용을 받아서 얇게 쪼개지는 암석이다. 그 후 이 곳은 지각 변동을 받았고, 그 후 융기하였으며, 지금은 라인강에 의해서 침식되고 있다.
전망대는 제법 넓었다. 중앙에는 긴 머리 여인상이 바위 위에 앉아있다. 선원들을 미혹시켰다는 로렐라이 언덕 위의 여인이다. 로렐라이 언덕 주변의 강에서는 선박 사고가 많았다. 라인강에서도 강폭이 가장 좁고(130m), 수심이 가장 깊으며(20m), 유속이 빠르기 때문이다. 빈번한 사고 때문에 옛날부터 여러가지 이야기가 전해오게 되었다. 그 중 하나가 언덕 위에서 금발 머리를 빗으며 노래하는 아름다운 여인에 반한 선원들의 배가 바위에 부딪쳤다는 이야기이다. 전해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독일의 유명한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가 로렐라이라는 시를 썼다. 독일 작곡가 실처는 이 시를 바탕으로 작곡을 했다. 그 후 로렐라이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훌륭한 예술가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전망대의 안전대를 따라 죽 걸으니 라인강 반대편이 보였다. 라인강을 내려다보는 전망 만으로도 방문할 가치가 충분한 곳이다. 협곡을 따라 구부러진 강의 양측 모두에 철도와 도로가 보였다. 라인강은 수로 뿐 아니라 육로를 통한 물류도 활발한 것 같았다. 스위스에서 시작한 강줄기는 독일의 서부를 따라 북으로 한참을 흘러서 네덜란드를 거쳐서 대서양으로 흐른다. 강 유역과 대양까지 이어지는 물류 연결망이다. 전망대에는 큰 주차장과 식당이 있었다. 비로소 이 곳까지 차로 올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옆에는 큰 건물을 새로 짓고 있다. 찾는 사람이 많아서 관광을 활성화하려는 것 같다.
라인강 중류 지역은 고성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그 중 한 곳 들러보기로 했다. 막스부르크성을 선택했다. 라인강 협곡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포함된 곳이다. 이 성은 40여개의 성 중에서 함락되거나 파괴되지 않은 2개의 성 중 하나로 유명하다. 온전한 성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12세기에 건설되어, 이 지역의 영향력있는 귀족들이 소유했다. 성은 높은 언덕 위에 있었다. 들어가려면 여러 개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 첫번째 문은 큰 저택의 문 같아 보였다.
문을 들어서자 어두운 실내 통로가 나왔다. 이십여 미터 정도를 지난 후 길은 좌측으로 구부러졌다. 그 다음에는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골목이 기다리고 있었다. 작은 두번째 문이 나왔다. 방어를 위한 설계인 것 같았다. 좌측 계단 위에 있는 매점에서 표를 구입했다. 영어와 독일어 가이드 중에서 영어를 선택했다.
예약 시간이 되어, 영어 해설자를 따라 두번째 문을 들어섰다. 다시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길을 올라갔다.
위에는 약간 넓은 광장이 있고 라인강 쪽 건물 안에는 여러 개의 화포가 배치되어 있었다. 15세기에 헤센주의 백작이 이 성을 소유하게 되면서 성을 증축하고 화포를 배치했다고 한다. 라인강을 따라 운행하는 배를 통제하려고 했던 것 같다.
성 안에 들어왔지만 또 다른 높은 성벽이 나타났다. 내성 성벽 앞 정원에는 독이 있는 식물을 길렀다고 한다. 정원도 방어 수단이었던 것 같다. 내려다보이는 라인강 전경이 아름다웠다.
이 성에는 귀족이 직접 거주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성을 지키는 기사들을 위한 생활 편의 시설을 엿볼 수 있었다. 먼저 와인의 숙성 및 보관을 위한 오크통이 늘어서 있는 저장실이 나타났다. 규모로 볼 때 술을 자주 마셨던 것 같다.
좁은 계단을 올라가니 넓은 층이 나왔다. 입구에는 음식을 만드는 커다란 부엌이 있었다.
기사들의 모임 및 여가 공간도 있었다. 성의 두꺼운 벽과 작은 창 때문에 실내 채광이 부족했던 것 같다. 창문을 잘 활용하고 있었다.
종교 시설도 있었다. 아담한 성당이었다. 천장은 종교적인 그림과 아치 형태로 장식되어 있었다.
무기고와 갑옷 전시실도 보였다.
무기와 생활용품을 직접 만들던 대장간 시설도 방문했다. 성을 돌아보고 나면 실망스러울 때가 많았다. 아일랜드의 블라니 성을 방문했을 때에도 아주 투박한 모습에 실망을 했다. 아마 영화에서 그려진 성주나 공주의 낭만적인 모습을 기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막스부르크성도 투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성의 겉모습과 내부 모두 멋진 것과 거리가 있었다. 방어에 중점을 두어 주변의 돌을 이용해서 만든 요새이기 때문이다. 난방, 조명, 화장실, 프라이버시 등 모든 것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 편리한 아파트생활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성에서 생활은 견디기 힘들 것 같았다.
막스부르크 성 방문을 마치고, 근처에서 가볍게 점심 식사를 했다. 다시 차를 달려 쾰른으로 향했다. 쾰른은 로마시대에 형성된 오래된 도시라고 한다. 쾰른(Colon)이라는 이름은 서기 50년에 변방의 마을에서 로마의 식민도시로 격상되었던 아그리피나의 식민도시(Colonia Agrippinensis)라는 이름에서 유래했다. 지금의 이름이 식민(Colon)이라는 뜻이고, 식민이 당시에는 수준 높은 도시라는 의미라니 역설적이다. 아뭏든 오래 전부터 중요한 도시였던 것 같다. 현재 인구가 108만명 정도로 독일에서 4번째로 큰 도시이다. 모처럼 복잡한 도시에 들어서니 길을 찾느라 신경이 많이 쓰였다. 쾰른대성당 가까운 주차장을 찾았다. 전부터 쾰른 대성당을 가보고 싶었다. 건미는 이미 쾰른대성당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했다. 가는 길에 멋진 동상을 만났다. 호이마르크트 크리스마스 마켓 광장에 있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동상이었다. 말을 타고 있는 모습이 멋지다. 공덕비 같은 것인가 보다.
독일어로는 쾰르너 돔(Koelner Dom)이라고 부르는 쾰른 대성당이 보였다. 1996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고 한다. 프랑스식 고딕양식으로, 첨탑의 높이는 157m이다. 1248년에 초석을 놓았으나 공사가 지지부진 하다가, 1560년에는 건설이 멈추었다. 1842년 프로이센이 독일 통일을 주도하면서 상징적 건축물이 필요하게 되었다. 원래의 설계도를 찾을 수 있어서 이를 바탕으로 1880년에 완성했다고 한다.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의 대폭격으로 쾰른시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이 성당은 문화재이기 때문에 폭격대상에서 제외되어 큰 손상을 입지 않았다고 한다. 하늘을 찌를듯한 뾰족한 탑, 아치형 문과 창문, 세밀한 조각상 등 아름다운 고딕 성당의 모습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퉁이를 돌아서 두개의 탑이 보이는 성당 정면을 바라보았다. 서향이어서 지는 해가 정면으로 비추었다. 덕분에 섬세한 외벽 장식이 두드러져 보였다.
다시 모퉁이를 돌자 쾰른 중앙역이 보였다. 넓은 광장에는 한 사람이 어린이와 함께 춤공연을 하고 있었다.
마침 성당은 개방 중이었다. 높은 기둥이 시원하게 위로 뻗어 있다. 중앙의 높은 부분 양쪽 면에는 스태인드글라스가 화려하게 이어져 있다. 좌측에는 파이프 오르간이 붙어 있다. 저 멀리 제대 뒤에는 황금색 동방박사 성골함이 빛나고 있다.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에 있던 것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허락을 받아 314년에 밀라노로 옮겨왔다고 한다. 1164년에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바르바로사가 쾰른 대주교에게 기증하여 쾰른으로 오게 되었다. 서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기독교 유물에 속할 것이다. 쾰른은 전반적인 독일 북부 지역과는 달리 전통적으로 가톨릭 세력이 강한 곳이다.
쾰른대성당을 둘러보고 인근 광장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모둠 구이와 샐러드였다. 넓은 광장은 주변 식당의 테이블과 의자로 채워져 있었다.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쾰른시에는 큰 행사가 있다고 했다. 시내 호텔비가 평소보다 3배 가량 비싸다. 도시 남쪽에 있는 외곽 호텔을 찾았다. 라인강변에 있는 호텔이었다. 가는 길에 산업지대를 지났다. 큰 공장지대가 이어져 있었다. 호텔에 도착해서 바라보니 라인강에 공장의 불빛이 환하게 비쳤다. 장관이다. 쾰른은 거대한 산업 도시였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자동차, 기계조립, 에너지 환경산업, 화학, 제약, 바이오 테크 등이 발달되어 있다고 한다. 라인강에 접해있고 루르(Ruhr) 공업지대와 인접해 있으니 산업이 발달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이 도시에 대해서 조금은 더 알게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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