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26(일)
8시 전에 하와이화산국립공원에 도착했다. 입구에 근무자가 없어서 입장료를 내지 못하고 들어갔다. 먼저 킬라우에아 방문객 센터로 갔다. 역시 아직 닫혀있다. 패널을 둘러보는데 고도가 높은 곳이라 서늘하다. 크레이터림 드라이브 서쪽으로 출발했다. 조금 가니 스팀벤트가 나왔다. 난간으로 막아놓은 구멍에서 끊임없이 화산증기가 나왔다. 길 건너에도 여기 저기에서 증기가 나오고 있다. 유황 냄새가 났다. 깊지 않은 지하에 마그마가 있다는 증거이다.
조금 더 이동하니 킬라우에아 전망대에 도착했다. 길지 않은 트레일을 걸어서 분화구가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분화구의 규모 자체가 엄청나게 크다. 용암이 분출된 탓인지 가운데 부분이 아래로 꺼져 있다. 어두운 암석과 흰색 화산가스가 대조를 이룬다. 풀한포기도 없는 모습이 삭막하다. 분화구의 오른 쪽 부분이 더 움푹 꺼져있고 계속해서 화산가스가 나온다. 그 부분이 화산활동이 활발한 곳이다. 아쉽게도 그 아래 부분은 림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다. 트레일을 따라서 오른 쪽으로 더 가보았다. 수증기를 내뿜고 있는 분화구의 모습이 살짝 보인다. 지구 깊은 곳에서 계속 용암이 올라오는 열점이다. 인상적이다.
다시 차로 이동해서 조금 더 높은 곳에 있는 하와이 화산 관측소로 갔다. 건물에 접근할 수 없도록 철조망으로 막혀있다. 자세히 보니 건물은 금이 가고 주저앉고 있었다. 화산 폭발로 분화구 주변 림이 무너지고 있다고 한다. 관측소는 폐쇄되었고, 저 멀리 보이는 림 주변 트레일도 끊겨 있다. 그 부분이 무너진 탓이다. 전망대에서 분화구를 내려다 보는 기대를 접어야 했다.
다시 반대 방향으로 이동해서 이키분화구로 갔다. 현재 용암 분출은 멈춘 곳이다. 분화구 규모는 킬라우에아보다는 작았지만 상당히 크다. 어두운 색 분화구 바닥에는 트레일이 나 있고 사람들이 걷고 있다. 분화구 위를 걷는 기분이 어떨지 궁금했다. 아직 암석으로 덮여 있는 탓인지 풀조차 자리지 않았다.
이키 분화구에서 서스톤 용암 동굴까지 이어진 산책로를 걸었다. 울창한 나무 사이로 햇살이 가볍게 들어온다. 맑고 상쾌한 공기와 적당한 오르막 덕에 발걸음이 가볍다.
그리 오래지 않아 용암동굴에 도착했다. 동굴 입구는 울창한 숲으로 덮여있다. 동굴의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제주도 만장굴보다 작다. 용암동굴의 특징도 아주 뚜렷하지는 않았다. 걸을 수 있을만큼 조명이 비추고 있다. 한참 걷다보니 반대편 입구가 나왔다. 숲속 오솔길은 다시 처음 입구 쪽으로 이어져 있다.
채인오브더크레이터스로드를 따라서 남쪽으로 내려갔다. 계속해서 크고 작은 분화구들이 나왔다. 분화구 채인이라는 길 이름이 실감난다. 내려서 분화구를 감상하고 다시 출발했다. 분출한지 얼마 안된 분화구도 있고, 시간이 흘러서 식물이 자란 분화구도 있었다. 분화구 이름을 다 기억할 수 없었다.
길은 바다를 향해 계속 내리막이다. 멀리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형은 바다를 향해서 낮은 경사를 이루고 있다. 온통 검은색 현무암이다. 가까이에서 보면 파호이파호이 용암이다. 동아줄을 쌓아놓은 것 같은 주름이 잘 보였다. 분화구에서 오랫동안 용암 분출이 반복되었을 것이다. 엄청난 용암 분출로 섬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한편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길이 끝나는 곳까지 왔다. 해변의 햇살은 뜨겁고 기온은 높다. 조금 걸으니 홀레이 바다 아치가 보였다. 일종의 해식동굴이다. 용암은 흘러서 육지를 만들고, 바다는 다시 그 육지를 깎아내고 있다. 지구시스템 상호작용의 현장이다. 주변에는 검은색 돌고래 무리가 물 위로 나왔다 들어가기를 반복한다.
왔던 길을 되돌아 와서 하와이 화산국립공원 입구를 거쳐서 케아아우라는 마을에서 우회전해서 칼라파나 마을로 향했다. 용암분출로 덮힌 곳이다. 용암 분출이 사람에게 주는 영향이 어떨지 궁금했다. 마을 입구에 다다르자 포장된 도로가 없어지고 비포장 도로가 나왔다. 그 길을 계속 달리자 아주 검은색 용암으로 덮힌 대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온통 용암 뿐이었다. 길가에는 2010년에 분출된 용암이라는 흰색 표지가 보였다. 용암 때문인지 이 곳에 마을이 있었다는 아무런 단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아마 집들은 용암에 묻히거나 용암 열기에 모두 타버린 것 같았다. 한참을 가자 용암 위에 임시로 지은 집들이 보였다. 갈 곳이 없는 주민들이 다시 돌아와 집을 짓고 생활하는 것 같았다. 검은 용암 대지로 뒤덮힌 마을을 보면서 마음은 무거워졌다. 용암 분출은 마을을 덮어버릴 뿐 아니라 상당히 오랫동안 재건할 여지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마우이에서 불에 탄 도시 라하이라를 보면서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 곳은 집을 다시 지을 수라도 있었다. 여기는 13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폐허이다.
마지막 코스는 용암나무주립공원(Lava Tree State Park)이다. 숲이 있는 곳에 용암이 분출해서 생긴 곳이다. 나무를 만난 용암은 식으면서 나무를 둘러싸게 된다. 한편 용암을 만난 나무는 높은 열에 숯으로 변하고 시간이 지나면 풍화된다. 그래서 속이 비어있는 용암 기둥이 생긴다. 이 곳은 그렇게 생긴 용암나무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수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당시 큰나무들이 많았던 것 같다. 용암나무들의 크기가 매우 크다. 용암나무 안에서는 식물들이 자라서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도 있었다.
은희 생일 축하겸 힐로 시내에 있는 Pesto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식당 한켠에서는 두명의 뮤지션이 오래된 팝송을 기타와 색소폰으로 연주하고 있다. 샐러드, 리조토, 피자, 생선요리를 시켰다. 훌륭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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