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5
오늘도 강풍과 눈 예보가 이어졌다. 안전한 여행을 바라면서 링로드를 따라 첫번째 목적지인 스토크스네스 (Stokksnes) 곶으로 출발했다. 아이슬란드 남동 해안에 바다 쪽으로 뻗어있는 반도이다. 곶의 입구에 이르자 서편에 파란 하늘이 보였다. 오던 길을 되돌아보니 바트나요쿨 빙하가 보였다. 장대한 모습이 아이슬란드 최대 빙하다웠다.
스토크스네스 바이킹카페 주차장에 도착했다. 캠퍼밴 주변에는 아침식사 준비하는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카페 앞에는 우리나라 장승같은 남녀 목각이 서 있었다. 바이킹 족장 부부의 환영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바이킹카페와 게스트하우스가 함께 있었다. 이 곳에서 바이킹빌리지 입장권을 팔고 있었다. 벽에는 이 지역의 지질, 생태, 역사, 지리 등에 대한 정보를 담은 여러 판넬이 붙어 있었다. 큰 도움이 되었다.
이 곳의 경치는 그동안 거쳐왔던 남해안과는 사뭇 달랐다. 가파른 산사면은 토양과 자갈로 덮여서 밝은 갈색으로 보였다. 이 지역에는 화산암이 아니라 반려암이라는 어두운 색의 심성암이 많다고 한다. 심성암은 마그마가 지표까지 올라오지 못하고 지하 깊은 곳에서 천천히 식은 암석이다. 앞에 서있는 캄브혼산 아래에 나무로 만든 집과 울타리가 있는 바이킹빌리지가 보였다. 아주 오래 전부터 작은 농장이 있었다고 되어 있다. 내 눈에는 농사를 지을 만한 곳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 곳 바다에는 물고기가 많았다고 한다. 해변에는 어부들의 오두막 흔적이 있다고 한다. 아이슬란드 여러 곳에서 어부들이 모여들었다. 한편 바다가 거칠어서 난파선도 많았다고 한다. 멀리 해변에 돔과 등대가 보였다. 돔은 레이더 시설이라고 한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대 동안 미군 레이더 기지가 이 곳에 있었다. 아이슬란드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 때문에 세계 2차 대전을 벗어날 수 없었다. 독일의 아이슬란드 점령을 우려한 영국이 1940년에 당시 덴마크 영토였던 아이슬란드를 침공했기 때문이다. 당시 덴마크는 이미 독일에 점령당한 상태였다. 영국군은 이 곳에 막사와 경비초소를 세웠다. 하지만 1941년에 아이슬란드 방어권은 미국으로 넘어갔다. 아이슬란드는 1944년에 알씽기 의회에서 독립을 선언하였다.
동부 피요르를 향해서 출발했다. 흐린 날씨 속에서 강풍을 뚫고 달렸다. 아이슬란드는 위도 60도가 넘는 곳이어서 극동풍 지역이다. 동쪽 해안은 거의 항상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거친 파도에 노출되어 있다. 안개가 자주 끼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링로드는 가파른 절벽 아래로 해안선을 따라서 구불구불 이어져 있었다.
긴 절벽 해안을 지나자, 피라미드 모양을 한 산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거친 파도는 검은 암석으로 된 해안을 두드렸다.
해안을 따라 좀 더 이동하자 반쯤 눈에 덮힌 산들이 이어졌다. 하얀 눈 때문에 수평으로 쌓인 용암층이 두드러져 보였다. 툰드라 기후대라는 것이 실감났다. 9월 중순에 눈덮힌 산이 계속되는 것을 보게 되니 위축되는 기분이었다. 마음 한편에는 이게 진짜 아이슬란드 여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구불구불한 해안 길을 달려서 듀피보구르 (Djupivogur)라는 작은 어촌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에는 트램폴린(방방이)를 비롯한 체육공원이 보였다. 많지 않은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주민들을 위한 배려가 많은 나라인 것 같았다.
항구에서 해안을 따라 좌회전을 했다. 조각 작품을 보기 위해서다.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시구르두르 구드문드슨(Sigurður Guðmundsson)의 '메리만(Merry Bay)의 알(Eggin í Gleðivík)'이라는 작품이다. 알 모양의 돌이 만을 따라 죽 늘어서 있었다. 화강암으로 만든 34개의 큰 알 조각이다. 색깔이 다양했다. 이 지역에 둥지를 트는 새들의 알 모양이라고 한다. 대부분은 철새이다. 알은 희망과 미래를 상징한다. 황량하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새들은 알을 낳고 새끼를 키워나간다. 이곳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이슬란드에는 화강암이 별로 없을 것이다. 알고 보니 중국에서 수입한 암석이라고 했다.
동부 피요르의 구불구불한 해안 도로를 달렸다. 피요르는 빙하에 의해서 침식된 U자 계곡에 바닷물이 들어온 만을 말한다. 한참을 달린 후 그린록 표지판을 만났다. 베루피외르더르 피요르(Berufjörður fjord)의 바닷가로 내려갔다. 녹색 절벽(Blábjörg cliffs)이 서 있었다. 이 곳은 2012년에 자연 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약 천만년 전에 발생한 화산 활동으로 용결 응회암(tephra layer, 또는 ignimbrite)이 쌓인 곳이다. 당시 분출한, 뜨거운(100~800도) 화산재가 쌓이고, 눌리고, 서로 달라붙어서 용결응회암이 되었다. 이 암석이 나중에 변질되면서 클로라이트라고 하는 녹색 변성 광물이 많이 생겼다고 한다.
해변에 널린 그린록 조각을 살펴 보니 과연 녹색 광물이 아주 많이 보였다. 강풍이 불고 진눈깨비가 내려서 오래 머물기 어려웠다.
비와 강풍 때문에 서둘러 다시 길을 재촉했다. 가끔씩 길을 건너는 양떼를 만났다. 이 곳 토박이들이 길을 비켜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피요르를 가로지르는 낮고 긴 다리를 건너서 브라이드달스비크(Breiðdalsvík)라는 작은 마을로 들어갔다. 점심식사를 하려고 식당을 찾았다. 하지만 문을 연 곳이 없었다. 알고 보니 아이슬란드에서는 일요일에 모든 식당과 가게가 문을 닫는다고 한다. 큰 도시에 가야 문을 연 식당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갈 길은 멀고 배는 고픈데 낭패이다. 오늘 따라 조식을 먹으면서 간식거리를 챙기지 말자고 제안했었다. 누구를 탓하랴.
다시 길을 재촉해서 스퇴드바르히외르두르 (Stöðvarfjörður)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동부 피요르 지도와 관광명소가 표시되어 있었다. 피요르는 여러 개의 손가락처럼 바다로 길게 뻗어 있었다. 우리 위치는 붉은 색으로 표시된 (1)번이다. 우리는 비행기 표시가 있는 에일스타디르까지 가야 한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았다.
이 마을에는 한평생 동안 많은 암석을 수집한 여성의 암석 박물관이 있었다. 주차를 하고 컵라면과 과일로 점심을 대신했다.
나무 울타리 너머로 수석을 전시한 것 같은 정원과 전시장이 보였다. 아주 많은 다양한 암석이 층층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한가지 일에 매진한 결과이다. 문득 25년간 자녀들을 위해서 돌탑 3천여기를 쌓아 올린 것으로 유명한 강릉 노추산 모정탑이 생각났다.
이번에는 건미가 운전대에 앉았다. 동부 피요르의 깊은 만을 따라 한참을 달렸다. 파스크루드스피외르두르(Faskrudsfjordur)만을 따라 한참을 달린 후 가장 안 쪽에 이르자 링로드는 고개길로 이어졌다. 다시 눈발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거의 보지 못했던 숲이 이어져 있었다. 고개를 넘으니 동부피요르에서 가장 긴 레이다르피외르두르만이 우측에 나타났다. 이어지는 계곡 길을 한참 동안 달려서 에일스타디르라는 이 곳에서 제일 큰 도시에 도착했다. 인구가 2600여명이라고 한다. 오늘 마지막 목적지인 헹기포스 폭포를 가기로 했다. 라가르프리오트(Lagarfljot) 호수를 따라 다시 한참을 달렸다. 괴물이 산다는 풍문이 있는 이 호수는 아주 길었다. 마침내 헹기포스 폭포에 도착했다. 이 폭포의 벽은 붉은색과 검은색 지층이 반복해서 쌓여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폭포까지는 상당히 걸어올라가야 한다. 강풍이 불고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폭포로 가는 것을 포기했다. 호수 반대편을 따라서 에일스타디르로 향했다. 호수가에는 캠핑장이 이어져 있었다. 에일스타디르에서 주유를 하고, 근처에 있는 수퍼마켓에 들렀다. 5분 후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급하게 내일부터 먹을 점심 거리를 골랐다. 큰 도시답게 식당도 영업을 하고 있었다. 저녁식사는 피자였다. 식당 문 앞에 장작이 가득 든 하얀 백이 있었다. 나무가 귀한 땅에서 장작화덕 피자를 맛보았다. 문을 연 식당이 있는 것조차 고맙게 느껴졌다.
식사 후 다시 숙소인 호텔 스투드라길까지 이동했다. 50여km를 더 가야했다. 오늘은 하루 동안 255km를 달렸다. 인적이 드문 구간이었다. 구불구불한 동부 피요르 해안을 따라서 작은 어촌마을도 구경할 수 있었다. 강풍이 불고 진눈깨비를 만나서 쉽지 않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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