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14
킬케니에서 국도 N76를 타고 남서쪽으로 향했다. 중간에 고속도로 M8을 만나서 코크로 갈 수 있었다. 아일랜드의 고속도로는 국도보다 넓고 중간중간에 졸음쉼터같은 휴게소가 있었다. 모처럼 편하게 운전했다.
코크는 아일랜드 제2의 도시로서 인구는 22만명 가량이다. 저녁에 도시 산책을 했다. 아름다운 항구 도시이다. 10세기에 바이킹족이 침입하여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했으며, 아일랜드 독립전쟁 동안 독립 세력의 주 근거지였다고 한다. 아일랜드는 1919년에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 전에 거의 800년 걸친 영국의 식민지 시기를 거쳤다. 또 그 전에는 바이킹족의 지속적인 침략을 받았다. 그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아일랜드 사람들은 정체성을 잃지 않고, 지속적인 저항을 통해서 독립을 이끌어냈다. 우리나라 사람 못지 않은 대단한 사람들인 것 같다.
2017.08.15
코크에 있는 중세 요새인 블라니성을 방문했다. 천년의 역사와 마법의 블라니돌로 유명한 곳이다. 10세기에는 나무로 만든 방어 구조물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13세기초부터 돌로 만든 성이 세워졌으나 파괴되었고, 현재의 성은 먼스터의 왕인 더못 맥카씨에 의해서 1446년에 축조되었다. 멀리서 보니 엄청난 규모의 성이 보인다. 하지만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단부는 보수공사 중인지 비계가 설치되어 있다.
성은 외성으로 둘러싸여 있고, 외성에는 높은 원형 탑이 자리잡고 있다. 이 외성을 넘어야 성의 입구가 나온다.
드디어 블라니성의 입구가 보인다. 크지 않은 아치형 문이다. 입구 문 바로 위에 창문이 보인다. 방이 있나보다.
입구로 들어가서 계단을 오르니, 입구 위의 창이 있었던 방이 보인다. 그런데 방 바닥에 구멍이 나 있다.
가까이에서 보니 살인구멍(murder hole)이라고 되어있다. 적군이 문으로 들어오면 위에서 뜨거운 기름을 부었다고 한다. 철저한 방어 시설인 셈이다. 험한 세상이었을 것이다.
성의 부엌이다. 입구 윗방에서 가까이에 있어서 뜨거운 기름을 나르기도 쉽게 되어있다고 한다. 연회장에서도 가깝다.
가족실이다. 공간이 넓다. 방어용 요새이다보니 창문의 수가 적고 크기도 작다. 내가 보기에는 답답하게 느껴진다. 지금은 천장이 없는 상태여서 실내가 밝았다.
벽난로인 것 같다. 아일랜드는 위도가 높아서 겨울에 상당히 추윘을 것 같다.
방과 방을 연결하는 복도의 모습이다. 벽에 석고를 입혔던 흔적이 남아있다.
방어용 요새이다보니 벽이 두껍고 창의 크기가 작다. 벽의 두께는 1m도 넘는 것 같다. 아래 쪽을 공격하기 쉽게 창의 윗부분이 안으로 들어오면서 높아진다.
공주의 방이다. 이 곳의 위층에는 사제의 방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이 곳에는 공주들이 거주했던 것 같다. 당시에는 벽은 석회로 발라져 있었고, 바닥은 타일로 장식되었다고 한다. 벽난로 자리가 남아있고, 실내에는 나무로 만든 가구도 있었다고 한다.
공주의 방 천장이 높다. 양쪽으로 창이 나 있어서 전망이 좋다.
성의 윗부분으로 이동해서 올라가는 도중에 외성의 원형 탑이 보였다.
유명한 블라니돌(스톤)이 가까와지는 모양이다. 블라니스톤은 마법이 있어서 여기에 키스를 하면 화술이 아주 풍부하게 된다는 전설이 있다. 사람들이 블라니스톤에 키스하기 위해서 줄지어 서있다. 그런데 이상한 광경이 보인다. 한 사람이 누워있고 옆에서 다른 사람이 붙잡아주고 있다. 어찌된 영문인지 물어보니 블라니스톤에 키스를 하려면 저런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한다. 그 곳에는 아래로 열린 공간이 있는데, 그 공간의 하단 부분에 블라니스톤이 있기 때문이다. 사진의 아래에 보이는 넓은 방은 연회실이다. 이 성에 살았던 왕이 손님을 초대하여 연회를 개최하는 곳이다. 지붕은 현재는 남아있지 않았다. 아마 나무로 만들었던 것 같다.
블라니스톤 마법의 유래가 궁금했다. 여러 설이 있는 것 같다. 그 중 하나는 블라니스톤이 운명의 바위(the Stone of Destiny)라고 알려진 돌의 한 조각이었다는 것이다. 그 운명의 바위는 스코틀랜드 왕이 그 위에서 왕위를 받았을 정도로 효험이 있었다고 한다. 1314년에 이 곳의 맥카씨 왕이 지원병을 보내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에 대승을 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운명의 바위 일부를 쪼갠 한 조각을 받았다. 이 돌을 블라니성을 세울 때 흉벽에 붙였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아일랜드의 신이나 마녀와 관련된 이야기도 전해온다. 그러나 역사와 관련된 것으로는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여왕과 관련된 것이 재미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아일랜드 남부의 먼스터 옆에 있었던 라이스터의 총독에게 블라니성을 확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성은 영국 여왕도 탐을 낼 정도로 훌륭했던 것 같다. 총독의 요청을 듣고 맥카씨는 온갖 교묘한 변명과 주제 전환으로 가득찬 편지를 보내서 여왕의 청을 피해 나갔다. 이 편지들은 유명해져서 블라니 편지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 이후로 블라니는 수다와 수려한 화술과 동의어가 되었다고 한다. 영어 사전을 찾아보니 blarney의 뜻은 아양, 아첨으로 나온다. 요즘에는 블라니성이 관광객을 불러 들이는 중요한 매력이 되었다. 맥카씨 왕은 참 현명하고 외교에 능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사람들이 키스한 부분은 짙은 색으로 변했다. 그런데 정말 쉽지가 않았다. 블라니스톤 아래에는 큰 공간이 뚫려있어서 두려움이 앞선다. 전문적으로 돕는 사람이 있어서 겨우 성공했다. 이제부터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는 뛰어난 화술을 구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블라니스톤에 키스하고 성벽을 돌아 내려왔다. 내려오기 전 내려다본 주변이다. 외성과 원형탑이 저 아래 보인다. 성이 무척 높음을 알 수 있었다.
성 가까이에 있는 블라니 집이다. 성은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거주용 목적으로 지었다고 한다. 1874년에 세워졌는데, 아일랜드 남부에는 보기 힘든 전형적인 빅토리아식 건물로 북부에 많은 스타일이라고 한다. 아일랜드를 운전하면서 많이 보았던 계단식 박공 지붕과 원추형 탑 지붕이 눈에 띈다. 지붕 가운데에는 굴뚝도 여러개솟아 있다.
낮은 건물이 있어서 가 보았더니 소박한 카페가 나왔다. 간식과 커피로 재충전을 하였다.
블라니성 영내에는 포이슨가든과 세븐시스터즈도 있다고 해서 산책을 했다. 포이슨가든은 이름 그대로 다양한 독초들이 있는 정원이다. 내 눈에는 멋진 작은 폭포와 아름다운 들꽃들만 보였다.
세븐시스터즈는 자연석 9개를 둥그렇게 세워둔 곳이었다. 선사시대 스톤헨지이다. 스톤헨지가 흔한 곳이라 그런지 이에 대한 안내는 없다. 안내판에는 9개 중에서 두개의 바위가 쓰러져 있는 것에 대한 전설이 소개되어 있었다. 2남 7녀를 둔 먼스터 왕이 두 아들과 전쟁에 나가서 대승을 거두었으나 두 아들이 전사하게 되었다. 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 스톤헨지를 지나면서 두 아들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서 2개를 쓰러트리도록 했다고 한다.
블라니성을 둘러보는 것으로 코크 여행을 마무리하고 킬라니를 향해서 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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