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이번 뉴질랜드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돌아보지 못한 곳을 방문한다. 숙소를 나섰다. 숙소 바깥 벽에는 여성 얼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 도시는 거리 예술 문화에서도 뒤지지 않는 것 같다. 이 그림은 호주 모델 테레사 오만을 론이라는 화가가 2013년 Rise Festival에 그린 것이라고 한다. 그녀는 마오리족 아버지와 독일계 호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뉴질랜드와 마오리 문화를 존중하는 사람 같았다. 그림 위에는 밤에 불을 밝히는 태양광 등까지 붙어있다. 그림은 처음보다 많이 풍화되어 코와 입 부분이 희미해졌다. 아래에는 낙서까지 되어 있었다.
크라이스트처치 성당 광장 앞에는 커다란 현대식 건물이 서있다. 크라이스트처치 컨벤션센터이다. 1400명을 수용하는 공연장을 비롯해서 전시장, 연회장 등 규모도 크고 시설도 좋은 것 같다.
오늘 첫번째 방문지는 캔터베리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1867년에 지질학 표본 전시로 시작되었다. 프란츠요제프 빙하의 이름을 붙인 폰 하스트 박사의 기여가 컸으며, 그는 초대 관장이 되었다. 도착해보니 사진으로 본 건물과 전혀 달랐다. 프론트에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지진으로 박물관 건물이 파손되었기 때문이다. 이 곳을 빌려 임시 전시를 하고 있었다. 입장료는 없었다.
나중에 보타닉 가든 근처에서 빅토리아 양식의 캔터베리 박물관 건물을 만날 수 있었다. 지진으로 파손되어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하고 있었다.
임시 개관인 탓에 전시물은 많지 않았다. 아문젠의 두상이 눈에 띄었다. 남극이 가까워서 뉴질랜드는 남극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아문젠의 남극 탐험에 대한 전시도 같은 맥락인 것 같다.
아문젠이 실제로 남극 탐험에 이용했던 썰매도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 공간의 절반 정도는 마오리족 화가들의 작품이었다. 새가 주제였다. 마오리족은 새를 현실과 천상의 신 사이를 연결하는 메신저로 생각했다. 신령스러운 존재였을 것 같았다. 안 쪽에서는 영상 작품을 보여 주었다.
그림의 가운데에 나방도 그려져 있었다. 양측에는 새가 붉은 색 깃털을 물고 바라보고 있다. 하단에는 나무로 둘러쌓인 인간 세상 영역을 표현한 것 같다.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다른 작품에서는 새들이 목걸이를 하고 서로 연결된 실을 물고 있다. 아래 부분의 문양이 마오리 마을에서 본 것이었다. 문양들도 붉은색 실로 연결되어 있다. 자연계의 감춰져있는 어떤 관련성을 표현한 것 같았다.
켄터베리 박물관에서 조금 이동하자 독특한 모습을 한 크라이스트처치 미술관이 나왔다. 미술관의 규모가 제법 컸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비추는 조명이 눈길을 끌었다. 책상과 의자를 천장에 거꾸로 붙여 놓았고 긴 형광등이 사이 사이에 매달려 있었다.
마우린 랜더의 빛의 실이라는 갤러리에 들렀다. 자외선, 줄, 동영상, 사진을 조합한 전시가 내 눈을 끌었다. 마오리족의 실 놀이(string games)와 설화 등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어렸을 때 손가락으로 실 놀이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이디 브리켈의 작품도 특이했다. 여행과 근육의 관련성을 표현했다고 한다. 손, 근육 등이 중첩되어 있는 것 같다. 손가락이 중첩된 부분은 뇌 모양 같기도 했다. 에너지의 흐름은 정신 작용으로 반향되고, 의사소통 욕구로 이어지는 것을 표현했다고 한다.
고통과 부끄러움을 떠나 보내는 큰 배를 나타낸 작품도 있었다. 배와 배경의 색이 강렬하다. 마운가롱고 데 카와라는 마오리 작가의 작품이다.
캔버스에 부드러운 선을 이용한 작품도 만났다. 캠벨 패터슨이라는 뉴질랜드 작가이다. 노래라는 제목이다. 여러 선율이 조화를 이룬 감미로운 노래일 것이다.
흥미로운 작품들을 감상하고 크라이스트처치 보타닉 가든을 향했다. 날씨는 화창했지만 바람은 차가웠다.
보타닉 가든은 헤글리공원의 일부였다. 헤글리공원의 규모는 엄청났다. 18홀 골프장도 이 공원의 일부였다. 보타닉 가든 안에 있는 뉴질랜드 가든을 보러 갔다.
가는 길에 빅톡리아 호수를 만났다. 제법 큰 호수였다. 다양한 새들이 한가롭게 떠 있었다.
공원 입구를 지나서 오른쪽 길로 접어들었다. 잠시 후 울타리 안에 들어있는 나무를 만났다. 침엽수이다. 이름이 울라미 소나무이다. 호주의 뉴사우스웨일스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중생대에 지구 상에 처음 나타난 살아있는 화석이다. 다 자란 나무는 전세계에 100 그루를 넘지 않는 희귀한 나무라고 한다. 크라이스트처치 보타닉 가든 150주년 기념으로 이 곳에 심었다. 뉴질랜드에서는 최초였다. 이파리 모습이 특이해 보였다.
보타닉 가든에는 큰 나무가 많았다. 남반구 너도 밤나무가 많다고 한다.
캔터베리 건조지역 생태계이다. 비도 잘 내리지 않는 혹독한 환경이다. 강한 생명력을 가진 덤불 풀이 많았다.
줄기가 꼬인 것처럼 보이는 큰 나무도 있었다. 위와 아래 부분의 바람이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한다. 나무가 얼마나 큰지 두 팔을 벌려도 줄기 일부에만 닿을 수 있었다.
뉴질랜드 가든을 돌아서 걷다보니 중앙 장미 가든이 나왔다. 다양한 장미가 피어 있었다. 전성기는 지난 듯 했다.
장미 가든 옆에는 여러 개의 온실이 있었다. 온실 내부에는 다양한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화사한 꽃이 만발한 온실도 있었다.
보타닉 가든을 둘러보고 나오니 바로 길 건너에 아트 센터가 보였다. 예술, 문화, 교육 등에 대한 흥미를 진작시키고 촉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서 장소 제공을 비롯한 여건 조성을 한다. 건물이 고풍스러웠다. 한 때는 켄터베리대학교와 켄터베리 남고, 여고 캠퍼스였다고 한다. 23채의 건물이 있는데 그 중 21채가 뉴질랜드 1등급 사적지이다.
이 곳에서는 다양한 행사가 개최된다. 콘써트, 전시, 축제, 워크숍, 코레로 등이다. 코레로는 마오리어로 말을 한다는 뜻인데 내게는 친숙하지 않은 장르이다. 마오리족의 판소리가 아닌지 모르겠다. 건물 내부도 고풍스러웠다. 붉은 벽돌과 돌로 벽을 쌓았고 천장은 목재로 만들었다.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아트센터의 건물들도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다행히 대부분 건물은 복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복구 중인 건물도 있었다.
시내 관광을 마치고 투속힐 와이너리를 방문했다. 크라이스트처치 외곽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었다.
와인 테이스팅을 했다. 이 곳에서도 피노누아 포도가 많이 산출되는 것 같다. 와인 맛은 괜찮은 편이었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샐러드, 플랫브래드, 구운 생선 요리이다. 음식은 모두 맛이 좋았다. 금요일인 오늘부터 부활절 휴일이다. 대부분 식당은 문을 닫았다. 문을 연 식당에서는 음식값에 15%를 추가로 내야 했다. 휴일에 일하는 종업원들을 위한 것인 것 같다.
식사 후에 주변을 가볍게 돌아보았다. 포도밭 너머로 크라이스크처치가 보였다.
숙소에 돌아오니 엘리베이터에 알림이 붙어있다. 휴일인 관계로 직원이 출근하지 않아서 방청소를 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프론트에 가서 수건과 필요한 물품을 가져와야 했다. 저녁과 휴일이 있는 삶을 추구하는 뉴질랜드이다. 불편을 기쁜 마음으로 감수했다. 우리 나라에도 모든 사람들의 저녁과 휴일이 보장되는 세상이 오기를 바랬다. 내일은 일찍 짐을 꾸려 귀국길에 오른다. 많은 것을 보고 느낀 4주간의 뉴질랜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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