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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 세연정, 망끝 전망대

한국/전북 전남 광주

by Travel Memories of GG Couple 2025. 6. 8.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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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30
윤선도원림의 동천석실, 낙서재, 곡수당을 살펴본 후, 세연정(洗然亭)으로 이동했다. 보길 윤선도 원림 관광정보센터가 이 곳에 있다. 여기를 먼저 들러서 원림 전체 입장권을 사는 것이 순서인 것 같았다.   

세연정은 우리나라 별서 정원 유적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넓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평일인 탓인지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보길초등학교 담장을 따라 나있는 길을 천천히 걸었다. 연못이 시작되는 곳에서부터 크고 작은 바위들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다. 

세연지에는 크고 잘생긴 바위가 일곱개가 있다. 그 중 하나인 혹약암을 만났다. 아래 사진에서 우측에 있는 바위이다. 힘차게 뛰어나갈 듯한 황소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투암이라는 이름을 가진 바위도 보았다. 연못 건너편에 있는 옥소대를 향해서 활을 쏠 때 발받침으로 쓰인 바위였다. 고산은 활쏘기로 체력단련에도 힘썼던 것 같다.  

멋진 소나무 뒤로 세연정이 살짝 보이기 시작한다. 

세연정은 경관이 수려해서 마음까지 씻은 듯 깨끗해진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 누각은 1637년에 지었는데 소실되었다가 1994년 복원되었다. 원래는 연못 한 가운데 있었는데, 복원하면서 연못 바깥에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지었다고 한다. 동쪽에는 호광루, 서쪽에는 동하각, 남쪽에는 낙기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고 한다. 아마 방향마다 경관이 크게 달라서 이렇게 다른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까 짐작해보았다. 세연정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쪽에서 누각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누각은 제법 넓었다.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문을 모두 올려놓아서 사방에서 바람이 들어왔다. 각 방향마다 서로 다른 아름다운 경치도 볼 수 있다. 칸칸마다 아름다운 풍경화를 담은 액자 같았다. 가운데 한칸은 온돌로 되어 있어서 추울 때에도 이용할 수 있다. 규모와 아름다움에 감탄이 나왔다. 개인의 정원이 이 정도였다면 당연히 시샘을 받았을 것 같았다.

세연정 현판이 있는 방향을 바라 보았다. 수련이 연못을 가득 채우고 있다. 가운데에는 네모진 인공 섬, 방도가 보였다. 늘어진 소나무 가지가 풍경에 아름다움을 더했다.  

남쪽을 바라보니 연못에 둥근 섬이 보인다.  

세연정을 나와 조금 이동하니 동대와 서대가 있었다. 서대는 완만한 경사가 진 나선형 길로 되어 있다. 춤을 추며 올라가면 정상에 이른다. 지금은 나무가 우거져 있었다. 

동대는 어부사시사가 불려질 때 여러 사람이 어울려 군무를 즐겼던 곳이라고 한다. 시조는 생활과 놀이 속에서 어우러지면서 발전된 것 같았다. 

돌로 만든 판석보가 보였다. 계곡을 가로 질러서 판석을 두 줄로 세워서 쌓았다. 판석 사이 사이에 강회를 채워서 물이 새지 않게 막았다. 그 위를 다시 판석으로 덮었다고 한다. 덕분에 계곡에는 물이 고여서 인공 연못인 세연지가 생겼다. 판석보는 물이 적을 때는 다리가 되고, 물이 많아서 넘치면 폭포가 되었다. 세연지 수면은 판석보 높이 이상으로 올라갈 수 없었다. 세연정이 물에 잠길 일도 없었다. 

판석보를 건너서 세연정과 세연지를 바라보았다. 정자와 호수, 주변 나무들, 그리고 크고 작은 자연석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고산은 이 곳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며, 책을 읽고 시를 썼을 것이다. 찾아오는 사람들과 담소하고, 악기를 타고, 군무를 즐기고, 활쏘기로 체력과 정신력을 기르는 생활이었을 것이다. 이곳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한글 시조로 손꼽히는 어부사시사가 탄생했다.  

판석교를 건너 호수가를 돌다보니 옥소대 표지판이 있었다. 옥소대는 활쏘기 표적 바위이다. 언덕을 조금 올라가야 볼 수 있는 모양이다.  

연못을 따라 좀 더 걸었다. 세연정과 세연지를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었다. 세연정과 주변 소나무가 호수에 비친 모습이 아름답다고 들었다. 하지만 오늘은 호수의 물 수위가 낮고 수련도 많아서 물에 비친 모습을 볼 수없었다. 

세연정은 동천석실이나 낙서재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여기는 풍류의 장이다. 조선 선비는 좋은 경치를 찾아서 시(詩), 서(書), 금(琴), 주(酒)를 즐겼다고 한다. 자연 경관을 시로 읊거나 모여서 시를 짓고, 글씨를 쓰며(서), 악기를 연주하고(금), 술을 마시며(주) 즐기는 것이다. 고산은 풍류를 위한 최고의 공간을 만들고, 여기에 춤까지 더해서 종합적인 문화 활동을 했던 것 같다. 문득 보길도를 비롯하여 해남에 자신의 이상향을 만들 수 있었던 윤선도의 배경이 궁금해졌다. 그는 일찍부터 간척과 해양 활동에 적극적이었던 해남 윤씨 가문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 윤선도는 가문의 활동을 계승하여 활발하게 서남해안을 개발한 개척자였다. 해남 윤씨가가 광범위한 간척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풍부한 노비 노동력과 탄탄한 경제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인근 마을 주민, 사찰의 승려, 승군까지도 간척에 동원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해남 윤씨 가문은 주민들에게도 간척지 일부를 나누어주어 그들의 생계를 도왔다. 고려말부터 왜구의 침략과 삼별초 항쟁 등으로 조선은 섬에서 사람이 살지 못하도록 하는 공도정책을 취했던 때이다. 세연정과 세연지를 돌아보고 입구에 있는 박물관에 들렀다. 고산과 부용동원림, 그리고 어부사시사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다. 

세연정 아래에 막걸리를 빚는 보길도가에 들렀다. 여행에서 지역 고유의 술을 맛보는 재미도 크다. 40대 사장님이 운영하는 자그마한 양조장이었다. 보길씨막걸리를 테이스팅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해남군의 찹쌀로 빚은 삼양주라고 한다. 9도이고, 탄산이 거의 없는 담백한 맛이었다. 올해는 추위로 동백꽃이 늦게 개화해서 '동백꽃지다' 막걸리를 맛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대기업에 다니던 박사장은 고향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양조 외에도 고향의 문화자본을 되살리고 전파하려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우리가 머물 숙소 가까이에 사는 작가님과 저녁 차담에 초대해 주었다.   

보길도 서쪽에 있는 선창리로 이동했다. 주로 주민들이 사는 마을이다. 우리 숙소는 마을 윗쪽 사면에 자리잡고 있다. 건축사가 직접 지은 집이라고 한다. 바다가 잘 내려다 보이는 곳이다.   

낙조로 유명한 망끝전망대가 멀지 않다. 망끝은 망월봉의 끝이라는 뜻이다. 데크로 잘 꾸며져 있었다. 공기가 깨끗하면 추자도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구름이 거의 없어서 일몰을 잘 즐길 수 있었다. 바다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항상 아름답다. 

주문한 전복이 도착했다. 제법 굵었다. 싱싱한 전복을 다양하게 맛보았다. 

보길씨막걸리도 곁들였다. 행복한 순간이다. 

보길도가 박사장님 주선으로 김민환 작가님 내외분을 직접 뵐수 있었다.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에서 은퇴후 이 섬에 자리 잡고 문학청년의 꿈을 되살려 작가로 데뷔하신 분이다. 한국 근대사의 굴곡을 시대정신으로 풀어나가는 분인 것 같았다.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라는 작품으로 이병주국제문학상, 노근리평화상 문학상을 수상했다. 보길도가 고향은 아니지만 이 곳과 인연이 맺어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보길도는 신비스러운 섬이다. 처음 와보는 숙소를 예약하고, 호기심에 도가에 들렀을 뿐인데, 인연이 생겨나고 좋은 분들을 만나서 사람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고산이 마련해 놓은 무대여서 그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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