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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더블린 여행, 오코넬 거리에서 성패트릭 성당까지

유럽 여행/아일랜드 여행

by Travel Memories of GG Couple 2023. 6. 12.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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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8
시내버스로 처음 도착한 곳은 오코넬 거리였다. 더블린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라고 한다. 입구에 큰 동상이 높게 서있다. 오코넬 기념탑이다. 오코넬은 아일랜드의 독립 영웅이라고 한다. 아일랜드의 안창호 선생같은 분인가 보다. 영국은 식민통치를 하면서 카톨릭을 철저하게 탄압했다. 그는 18세기 초에 카톨릭 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카톨릭 해방과 아일랜드연합법 폐지를 위해서 투쟁하였다고 한다. 영국은 1800년에 연합법을 통해서 아일랜드를 영국에 합방했었다.

오코넬 기념탑을 뒤로 하고, 남쪽으로 걸어가니 오코넬다리가 나왔다. 리피강을 남북으로 연결하고 있다. 강을 끼고 양쪽으로 높지 않은 건물이 늘어서 있었다. 시원하고 편안한 느낌이다.

강 남쪽에는 구시가지가 펼쳐져 있다. 좁은 골목을 따라 늘어선 오래된 건물과 각 건물마다 들어찬 작은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이어진다.

템플바를 만났다. 붉은색 외벽이 강렬한 인상이다. 더블린에서 가장 유명하고 오래된 바이자 이 지역을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템플바 내부를 들여다 보았다. 높지 않은 천장 아래 다양한 술과 잔이 쌓여있다. 이 곳 말고도 좁은 골목에 수 많은 펍과 라이브 뮤직 바가 몰려있다. 저녁에 다시 와봐야겠다.

구시가지가 끝나갈 무렵에 더불린 시청 청사가 나타났다. 기둥 6개가 전면 파사드를 장식하고 있다. 절제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신고전주의 양식이라고 한다. 1916년 아일랜드인들이 영국의 식민통치에 대항하여 부활절 봉기를 일으켰을 때 아일랜드 시민군의 수비대 기지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시청은 더블린 시의회의 본부이며, 시장과 시의원들이 시정에 대한 회의를 하는 곳이라고 한다. 시청 입구를 들어서자 로툰다가 나왔다. 황금색 장식이 아름다운 천장 돔을 12개 기둥이 받치고 있다. 기둥 사이에 석조상들이 보였다.  

석조상 중에는 역시 오코넬도 있었다. 

시청의 남쪽에는 더블린성이 서있었다. 13세기에 바이킹족의 요새와 정착지였던 곳에 세웠다고 한다. 1916년 봉기 이전에는 영국의 아일랜드 통치 본부였다. 1922년에 아일랜드가 자유국이 되면서 아일랜드 정부가 사용하기 시작했다. 아일랜드 대통령의 취임식도 이 곳에서 거행한다고 한다. 성의 규모가 제법 크고, 모양도 정교하고 품격이 있다. 다음 사진은 더블린 성의 베드퍼드 타워이다. 

더블린성 정원의 모습이다. 

채플 로얄 건물이다. 한 때 왕족들이 미사를 드리던 성공회 성당이라고 한다.  

중세탑이다. 1204년에서 28년 사이에 건설되었다. 더블린에서 가장 오래되고 원형을 잘 유지한 건물이다. 두께가 최대 4.8m에 이른다고 한다. 초기에는 왕의 보물과 무기 등을 보관했고, 그 후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더블린성 외벽의 철로 만든 성문을 통해서 들어갈 수 있는 더블린성 정원이다. 잔디밭에는 바다뱀의 패턴이 새겨져 있다. 이 곳은 원래 바이킹들이 배를 타고 나가는 무역 기지였다고 한다. 바닷물 색이 짙어서인지 블랙풀(black pool)이라는 아일랜드 이름 dubh linn으로 불렀는데, 현재 더블린의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더불린성을 나와서 서쪽으로 가다보니 크라이스트처치 성당이 나왔다. 더블린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처음에는 바이킹의 왕이세운 작은 규모의 성당이었다. 1170년 앵글로-노르만이 점령한 후 커다란 성공회 교회 건물로 재건축되었다고 한다. 

크라이스트처치 성당은 아치형 다리를 통해서 더블리니아 박물관과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는 바이킹과 중세 시대 더블린에 대한 전시와 연극 공연이 있다고 한다.

 
남쪽으로 더 내려가다보니 성패트릭 공원과 성패트릭성당이 나왔다. 성패트릭 공원은 1902년 에드워드 7세가 개설했다고 한다. 기네스 가에서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에 이 지역을 멋지게 조성하는 사업의 일부였다. 그래서인지 성당과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성패트릭성당 역시 성공회 성당이며, 오랜 역사를 가졌다. 12세기 말에 카톨릭 성당으로 건립되었으나, 현재는 아일랜드 정교회 성당이다. 한 도시에 두개의 큰 성당이 있었기 때문에 갈등과 대치가 생겼으며, 이를 조정하기 위한 협약을 맺었다고 한다. 

성패트릭은 아일랜드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분이다. 그는 5세기에 카톨릭을 아일랜드에 전파하였다.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이다. 영국인이었는데 해적에게 잡혀서 아일랜드에 노예로 끌려왔다. 어렵게 탈출해서 돌아갔지만 아일랜드에 카톨릭을 전파하라는 계시를 받고 사제가 되어 다시 돌아왔다. 노예 생활을 통해서 익힌 아일랜드 말과 문화가 전교에 큰 힘이 되었다. 켈트 다신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클로버 잎을 비유로 삼위일체를 이해시켰다. 그래서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색이 녹색이 되었다. 십자가도 교차 부분에 둥근 태양을 넣었다. 태양보다 십자가가 더 크게 느껴지도록 한 것이다. 토착 신앙을 반영하면서도 카톨릭의 우위를 알게 하려는 시도였다고 한다. 아일랜드 전국에 수백개의 성당도 세웠다. 문득 미국에서 경험했던 성패트릭의 날이 생각났다. 해마다 3월17일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녹색 옷을 입고 아일랜드식 밴드가 거리를 따라 퍼레이드를 했다. 아이리쉬펍은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로 가득했었다. 현재 삼천만명에 이르는 아일랜드계 사람들이 미국에 살고 있다고 한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조국을 떠나도 성패트릭을 잊을 수는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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