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4
제주도에는 볼거리가 다양하다. 여기에 주변에 있는 섬 여행을 더하면 여행은 더 풍성해진다. 제주도 주변에는 80개 가까운 섬이 있다. 그 중에서 유인도는 8개이며, 마라도, 가파도, 우도, 비양도, 차귀도, 추자도는 교통이 편리하고 관광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무인도는 71개이며 그 중에서 숲섬, 문섬, 범섬 등은 천연보호구역이자 생물권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들어갈 수 없다. 관광크루즈나 해저잠수함을 이용하면 주변을 감상할 수 있다.
가파도는 우리나라 최남단인 마라도와 제주도 사이에 있다. 제주도 주변 섬 중에서 4번째로 크다. 위에서 보면 가오리 모양을 닮아서 가파도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봄에는 청보리밭 축제가 열리고, 올레길이 조성되어 있어서 인기가 높다. 제주도 대정읍에 있는 운진항에서 마라도와 가파도 정기여객선이 다닌다 가파도까지는 불과 1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다.
배가 운진항을 출발하자 송악산(좌측)과 산방산(중앙), 그리고 멀리 한라산을 볼 수 있었다.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는 제주도는 아름다웠다.
배는 가파도 북쪽에 있는 상동포구에 도착했다. 가파도는 유인도 중에서 키가 작은 섬이다. 가장 높은 곳이 20여m에 불과하다. 크기도 작은 편이어서 걸어도 2시간 가량이면 돌아볼 수 있다고 한다. 자전거로 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터미널에는 자전거 대여소도 있었다. 가파도의 인구는 177명 정도라고 한다.
천천히 마을 길을 따라 들어갔다. 얼마가지 않아서 우물가에 허벅을 맨 여인상을 만났다. 150여년 전 개발한 상동우물이다. 가파도는 상동과 하동으로 나누어져 있다. 처음에는 이 우물 덕분에 이 곳에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그 후 하동에서 큰 우물이 발견되어 하동의 인구가 많아졌다. 작은 섬에 민물이 나오는 우물이 있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제주도 주변 섬에서 물걱정이 없는 곳은 가파도 뿐이라고 한다. 복 받은 곳이다.
완만한 오르막길을 느긋하게 걸어 올라갔다. 잠시 후에 청보리밭을 볼 수 있었다. 매년 4월초~5월초에 가파도에서는 청보리 축제가 열린다. 이 때 청보리밭 걷기, 올레길 보물찾기, 야외 공연 등 행사도 많다고 한다. 5월 하순으로 접어드는 시기인데도 청보리가 남아있는 것도 다행이었다. 대부분은 누렇게 익은 보리밭이었다. 이 곳의 청보리는 키가 1m 넘게 자란다고 한다. 청보리와 현무암 검은 돌담, 푸른 바다, 그리고 멀리 제주도가 배경으로 어우러지면서 멋진 풍경을 만들었다. 왜 이곳이 인기있는 관광지인지 알 수 있었다.
가파도에서 제일 높은 곳, 소망전망대에 도착했다. 해발 20.5m인데, 그 위에 2.5m 높이의 언덕을 설치했다. 전망대 주변에는 다양한 조각도 배치되어 있고 꽃밭도 조성해 놓았다. 한라산을 향해 설문대 할망에게 소망을 기원할 수 있는 장소라고 한다. 설문대 할망은 제주도를 만든 여성 거인신이다. 전망대에 올라서니 사방으로 전망이 좋다. 산방산과 한라산이 가깝게 보였다.
남쪽을 바라보니 풍력발전기 뒤로 마라도가 보였다. 이 또한 멋진 풍경이었다.
조금 내려가다가 '가파도봄날에'라는 멋진 카페가 있어서 커피를 한잔할 수 있었다. 옆에는 가파초등학교가 있었다. 1922년에 설립되어 100년이 넘는 전통있는 학교이다.
학교를 지나자 회을공원이 나왔다. 회을은 김성숙 선생의 호라고 한다. 선생은 가파도에서 출생하여, 일본 강점기에 독립운동, 신교육운동, 협동조합 운동 등을 통해서 애국애족과 향토 사랑에 헌신한 분이라고 한다. 일본 유학까지 하셨다고 하니 당시 이 지역이 어업으로 풍요로운 곳이었던 것 같다. 이 지역 출신 훌륭한 분을 기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내리막길을 따라 걸었다. 오래지 않아 가파도 남쪽에 있는 가파포구가 나왔다. 해안을 따라 동쪽으로 향했다. 불턱이라는 돌담을 쌓아 놓은 공간이 나왔다. 해녀들의 탈의실이라고 한다. 추울 때에는 불을 쬐며 쉬기도 한 공동 공간이다. 바람이 많은 곳이니 꼭 필요한 시설이었을 것 같았다.
돈물깍이라는 생소한 이름도 만났다. 돈물은 담수 또는 민물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바닷가에서 샘물이 나오는 곳이다. 돌을 쌓아서 편리하게 보존하고 있었다. 이런 곳에는 사람들이 모여살기 마련이다. 하와이 빅아일랜드의 코나공항 남쪽에 있는 호노코하우 국립역사공원도 민물 샘이 있어서 원주민들이 모여살던 곳이었다.
가파도 동해안을 따라 걷는 기분은 상쾌했다. 멀리 푸른 바다와 제주도의 아름다운 모습이 이어졌다.
상동포구까지 즐겁게 걸었다. 포구 카페에서 청보리 빵과 청보리 막걸리를 맛보았다. 가파도는 제주도 최대 고인돌 군락지라고 한다. 제주도와 인근 섬에 총 180여기의 고인돌이 있는데 그 중 135기가 가파도에 있다. 역사 시대 이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살았던 풍요로운 섬이다. 보리밭 가운데에도 고인돌이 있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만나지 못했다. 여객선에 오르면서 다시 와봐야 할 이유가 생겼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