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 10: 고다포스 폭포, 아쿠레이리, 달비크 고래워칭

Travel Memories of GG Couple 2025. 1. 1. 23:08

2024.09.19
어제 미바튼 자연온천에서 만났던 한국인 부부와 같은 식탁에서 조식을 하게 되었다. 직접 계획과 예약을 해서 자유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와 여행 방식이 비슷해서 좋았다. 오늘은 아이슬란드 북부 지방을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는 날이다. 30분 정도 달리니 멀리 큰 폭포가 보였다. 고다포스 폭포이다. 높이는 12m, 폭은 30m 정도로 규모가 크진 않지만 아름다웠다. 종교적 역사에 뿌리를 둔 폭포로서 신들의 폭포라고 불리운다고 한다. 고디는 아이슬란드어로 사제 또는 족장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서기 1000년에 씽벨리르 의회에서 기독교를 국교로 결정했다. 당시까지 많은 주민들은 고대 북유럽 종교를 믿고 있었다. 토르, 오딘, 로키, 프레야와 같은 섬기던 신들의 우상을 이 폭포에 버렸다고 한다. 스칼판다플요트 강은 무심하게 물을 쏟아내고 있다. 

폭포를 향해서 조금 더 올라가 보았다. 좌측의 폭포는 흐르는 물만 보였다. 둥근 폭포 모양과 부서지는 물보라가 보기 좋았다.

다시 길을 재촉했다. 바들라헤이디 터널이 나타났다. 길이가 7.5km나 된다. 어제 밤에 이 터널 통행료를 온라인(http://tunnel.is)으로 납부했다. 벌금이 있기 때문이다. 터널 대신 고개 위로 가는 구도로는 무료로 이용할 수있다. 시간이 12분 정도 더 걸린다고 들었다. 더 나아가자 에이야피요르두르만이 나타났다. 아이슬란드에서 제일 긴 피요르이다. 70km에 이른다고 한다. 피요르를 건너자 아쿠레이리가 나왔다. 북부 최대 도시이며, 북부의 수도라고도 한다. 에이야피요르두르 피오르드 가장 안쪽에 있는 항구도시이다. 인구는 약 1만9천여명으로 아이슬란드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권이다. 어업이 발달한 곳이다. 
먼저 아쿠레이리 식물원(보타니칼 가든)을 방문했다. 400여종의 아이슬란드 고유 식물종을 포함해서 7천여종의 식물을 가꾸고 연구하고 있는 곳이다. 산책로를 따라서 천천히 둘러보았다.   

화단에는 여러 가지 꽃들이 피어있었다. 잘 가꾸어진 잔디밭 너머로 피요르가 보였다.  

건물의 측면이 모두 유리인 건물도 만났다. 유리를 분할한 모양이 숲과 같은 느낌을 준다. 북구 스타일 디자인인가 보다. 제법 유명한 카페라고 한다. 

다음에는 아쿠레이리에서 유명한 루터교 교회를 방문했다. 아쿠레이라르키르캬 교회이다. 레이캬비크의 할그림스키르캬 교회를 설계한 구드욘 사무엘손이 설계했다고 한다. 곧게 서있는 종탑이 스터들라낄 협곡에서 보았던 주상절리 모습 같았다. 이 도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서 1940년에 완공되었다. 마침 장례식이 거행중이어서 내부를 보지는 못했다. 

교회에서 아쿠레이리 번화가를 내려다 보았다. 피요르를 끼고있는 단정하고 아담한 도시였다. 

부두가에 있는 호프 문화 컨퍼런스 센터(Hof Cultureal and Conference Center)에 도착했다. 이 도시의 랜드마크인 것 같았다. 2010년에 개관한 둥근 원형 건물이다. 벽면은 주상절리 암석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특색있는 모습이다. 

안으로 들어갔다. 천장은 온통 유리창이다. 채광이 너무 좋았다. 공연장은 현대적인 시설과 훌륭한 음향장비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 여름에는 유명한 공연이 많이 열린다고 한다. 기념품점 앞 벽에는 그 동안 열린 공연 포스터가 줄지어 붙어 있었다.  

북쪽을 향해서 달렸다. 1번 도로를 벗어나서 82번 도로로 접어들었다. 달비크에 도착했다. 달비크는 '골짜기에 들어오는 강'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인구가 1454명 정도인 작은 항구 마을이었다. 이곳도 대표적인 고래 관광지이다. 고래관광을 하러 갔다. 가이드는 고래를 볼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15분 후에 출발한다고 해서 서둘러야 했다. 보온과 안전을 위해서 붉은색 옷을 입어야 했다. 배 앞에서 사진을 남겼다.   

배는 천천히 달비크 항구를 떠났다. 

가이드는 혹등고래, 쇠고래, 밍크 고래, 흰부리 돌고래 등 볼 수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특히 혹등고래(Humpback Whale)는 몸 길이가 15m 이상이고, 무게가 45톤에 이르는 대형 포유류이다. 주로 크릴 새우나 작은 물고기를 먹는다고 했다. 오늘 큰 고래를 볼 수 있기를 바랬다.  

항구 앞에는 제법 큰 섬인 크리세이(Hrisey)가 있었다. 저멀리에는 흰눈에 덮힌 높은 산능선이 보였다. 배는 섬을 지나서 만의 북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이동해서 만의 북쪽에 다달았다. 가이드가 고래가 보인다고 알려주었다. 과연 고래가 수면 위로 올라와서 분수 모양의 분기를 하고 있었다. 

고래는 고개를 내밀었다가 등을 보여주고, 마지막으로 꼬리를 보여준 후 물 속으로 들어갔다.  

배가 고래 가까이 접근하자, 고래의 흰 배 부분이 바닷물 속에서 밝은 파란색으로 보였다.  

그 후로도 많은 고래를 볼 수 있었다. 배는 고래를 찾아서 끊임없이 이동했다. 

고래를 보러 온 사람들을 실은 배가 제법 많았다. 그 중에는 쾌속선도 있었다. 고래는 배가 나타나면 물 속으로 들어갔다. 좀 귀찮아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대 이상으로 많은 고래를 볼 수 있었다. 매우 만족스러웠다. 북쪽에 있는 시클루피외르두르(Siglufjörður)라는 마을을 향해서 출발했다. 이 도시는 정어리(herring) 어업의 본고장이다. 헤링 박물관도 있다고 한다. 우리는 고래 관광을 하느라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이 도시에 있는 피시앤칩스 식당을 찾았다. 오후 4시 반인데 식당 문이 닫혀있었다. 여행 성수기가 지난 탓인가 보다. 도시는 아담하고 깨끗했다. 언덕 위에는 지붕이 빨간 교회가 서 있었다. 

북쪽 바다로 튀어나온 반도의 해안 길을 달렸다. 지형이 험해서인지 긴 터널이 많았다. 대부분 터널에는 차로가 하나 밖에 없었다. 터널 중간에 마주오는 차를 비켜가는 공간이 있었다. 북쪽 해안에는 인적을 찾을 수 없었다. 목초지도 없고, 마주치는 차량도 거의 없었다. 도로는 가끔씩 포장이 벗겨져 있었다. 그야말로 황량한 야생 그 자체였다. 문득 철저한 고독감이 몰려왔다. 지나친 적막감에 두려움마져 들었다. 한 때 한적한 산속에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것을 꿈꾸었다. 이 곳에 오니 무척 사치스러운 생각이었음을 깨달았다. 문명 속에서 너무 안락하게 살아왔던 것이다. 그렇게 적막한 해변과 계곡을 한참 동안 달려야 했다. 자동차에 이상이 생기지 않기를 바랬다. 구조해줄 사람이 올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서 마침내 숙소인 호프스타디르 컨트리 호텔에 도착했다. 헤라드스바튼 강변에 있는 곳이다. 아주 외진 시골이었다. 이 지역은 아이슬란드 토종말의 고장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제주도 같은 곳인가 보다. 객실에 들어가니 아주 멋진 전망이 기다리고 있었다. 굽이치는 강이 넓은 계곡을 휘감아 바다로 흐르고 있었다. 오랜 운전의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호텔 리셉션과 식당도 운치있게 꾸며져 있었다. 지역 농산물로 음식을 만드는 곳이었다.  

메뉴도 아이슬란드 토속적이었다. 저물어가는 전망을 즐기면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양고기와 대구 요리였다. 

255km를 이동했다. 유래가 깊은 고다포스 폭포, 북부의 수도인 아쿠레이리의 이모 저모, 달비크의 인상적이었던 고래워칭으로 만족스러운 경험을 한 하루였다. 시골스러운 호텔 주변 경관과 토속적인 느낌도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