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04: 신비로운 남해안을 돌아보다.
2024.09.13
아이슬란드 일주 링로드 여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날이다. 나쁜 소식은 오늘 예정되어 있던 빙하 스노우 모빌 타기가 취소된 것이다. 빙하 위를 달려볼 기대가 컸는데 아쉽다. 기후변화로 빙하가 많이 녹아서 빙하 관련 활동이 연말까지 모두 금지되었다고 한다. 얼음 동굴이 무너지고, 빙하 녹은 물로 홍수가 일어나기도 했다. 안전이 중요하다. 첫번째 방문지는 셀야란드스포스 폭포이다. 셀포스를 출발하여 1번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달렸다. 거리는 71km, 한시간 정도 걸렸다. 주차를 하고 보니 긴 절벽을 따라 여러 개의 폭포가 보였다. 절벽 위에 강이 흐르고 있나보다.
셀야란드스포스 폭포로 다가갔다. 화산암층 절벽 위에서 여러 줄기의 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높이는 60m로 제법 높았다. 물의 양이 적은 편이어서 웅장한 느낌은 없지만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 폭포 뒤에는 오솔길이 있었다. 절벽이 안 쪽으로 제법 깊게 패어 있었다. 아래 부분은 약한 암석일 것이다. 물에 젖은 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바라보는 폭포는 색다른 아름다움이 있었다.
가까이에 있는 글뤼프라부이 폭포를 보러갔다. 셀야드란스포스를 나와서 길을 따라 우측으로 더 걸어야 했다. 이 폭포는 계곡 안에 숨겨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협곡 입구 틈 사이로 안 쪽에 폭포가 살짝 보였다.
개울가에 있는 돌을 징검다리 삼아 들어가야 했다. 높이는 40m 정도이지만 이끼 덮힌 절벽 사이로 떨어지는 폭포의 모습이 매우 아름다웠다. 물방울이 날려서 얼굴과 옷을 온통 적셨다.
다음 목적지인 스카고포스 폭포를 향해서 출발했다. 조금 달리니 팍시베이커리 간판이 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휴식 시간이 필요했다. 커피를 한잔 하려고 들렀다.
그런데 건물 왼편에 전시 패널이 보였다. 왼쪽 벽에는 에이야퍄틀라요쿨 화산폭발이라는 큰 글씨와 화산폭발 장면이 그려져 있었다. 에이야퍄틀라요쿨은 작은 빙하의 이름이다. 이 빙하는 1666m 높이의 분화구 위를 덮고 있다. 이 화산 폭발과 관련된 방문객 센터를 찾고 있었는데 우연히 만났다. 행운이다.
화산폭발 당시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빙하 위로 화산재가 피어오르는 모습, 붉은 용암이 분출하는 모습, 공중에서 내려다 본 분화구, 농가 앞에 가축과 함께 앉아 있는 농부, 대피하는 토종 말 떼, 화산재가 덮힌 마당 등 화산 폭발과 인간의 모습을 잘 볼 수 있었다.
화산이 폭발할 당시의 화산재가 하늘 높이 분출하는 사진도 있었다. 이 화산은 2010년 3월부터 6월 사이에 분출했다. 특히 4월에 대규모 분출이 일어났으며, 화산재가 8km 상공까지 위로 솟구쳤다. 빙하가 녹아서 용암으로 들어가서 폭발이 더 강력해졌던 것 같다. 이로 인해서 서유럽 전역에서 항공기 운항이 중지되었다.
길 건너 에이야퍄틀라요쿨 빙하와 화산, 그리고 그 앞의 마을을 바라보았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평화스러워 보였다. 불과 얼음의 땅에서는 이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카페로 들어가서 빵과 커피로 요기를 하면서 잠시 휴식을 했다. 괜찮은 곳이었다.
다음 목적지인 스카고포스 폭포에 도착했다. 멀리서 보아도 웅장한 자태가 엄청나다.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높이도 60m로 상당했다. 무엇보다도 떨어지는 물의 양이 엄청났다.
폭포 옆에는 선명한 무지개가 떠 있었다.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뚜렷했다. 폭포에서 날려온 엄청난 양의 물방울 덕분이다.
인파를 헤치고 가까이 다가갔다. 부서진 물방울이 시야를 뿌옇게 가렸다. 폭포의 물은 중간을 지나면서 흩어져서 아래 쪽에 이르면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공기와 마찰로 물이 흩어지고 물방울로 날리는 것 같았다.
폭포 물이 흘러서 강을 이루고 바다로 가고 있었다. 강가에는 아이슬란드 토종 말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오는 길에 말농장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저 많은 말을 어디에 활용할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양을 기르는 곳도 있었으나 소 농장을 보지 못했다. 아마 소는 이 곳의 기후에 적합하지 않은 모양이다. 아이슬란드 토종말은 독특한 특징을 가진 순수한 혈통이라고 한다. 마치 우리나라 진도개와 비슷한 상황인 것 같았다. 900년 경 이 곳에 정착한 노르웨이 사람들이 말을 데리고 왔다. 982년 의회 알씽기에서 외래종 말 수입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이후 순수한 혈통을 갖게 되었다. 토종말은 크지는 않지만 온화한 성격과 이 곳 기후에 적합한 체질을 가졌다고 한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매우 아끼는 것 같았다.
폭포 위에 있는 전망대로 올라갔다. 전망대에서 스카고포스를 내려다 보았다. 아래 부분은 잘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쌍무지개가 같이 보였다.
전망대에서 동쪽을 바라보니 다음 목적지인 해식 아치가 저 멀리 보였다. 바다도 살짝 보였다. 그 사이에는 넓은 농지가 펼쳐져 있었다. 아이슬란드 농업의 중심지다웠다.
디르홀레이로 향했다. 바람이 거칠었다. 트레일을 따라 바닷가로 가자 길다란 검은 모래해변이 보였다. 양면으로 바다를 접하고 있었다. 레이니스피아라 해변이다. 2021년에는 세계 6대 해변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따뜻한 기후였다면 세계 최고의 해변이 되었을 것이다. 멀리 절벽과 뾰족한 해식기둥들이 보였다. 앞에도 제법 큰 해식기둥이 우뚝 서있다. 주상절리가 장식하고 있었다. 현무암이 분출되었던 곳이다. 멋진모습이다.
조금 더 걸어가자 이번에는 해식아치가 나타났다. 작가가 각이 진 바위 조각을 이어붙인 것 같았다. 주상절리로 된 암석이 파도에 침식되어 아치가 생긴 것이다. 특이한 모습이다. 이 지역에는 엄청난 용암 분출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반대편을 보니 절벽에 해식아치들이 줄지어 보였다. 디르홀레이 반도이다. 저 반도의 끝이 아이슬란드 최남단이다. 아름다운 곳이다.
비크라는 작은 마을에 있는 검은모래해변을 방문했다. 비크르피아라 블랙샌드비치이다. 입구에서 아이슬란드 토종말 승마 체험을 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말이 크지 않아서 몽골에서 했던 승마체험 생각이 났다.
검은 모래 해변은 무척 넓었다. 쏟아지는 햇살에 눈을 뜨기 어려웠다. 바람은 강하고, 파도 역시 거칠었다.
디르홀레이에서 보았던 해식기둥들이 이번에는 오른쪽에 나타났다.
꼭 보고 싶었던 주상절리 해변을 아직 찾지 못했다. 건미가 위치를 확인했다. 왔던 길을 되돌아서 레이니스드랑가로 갔다. 디르홀레이와 비크르피아라 블랙샌드비치의 사이에 있었다. 입구에 거친 파도를 조심하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들어서자 주상절리 절벽이 나타났다. 일정하게 수직으로 길게 뻗은 절리가 단정하게 절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가까운 검은 모래 해변에는 파도가 거칠게 달려들고 있었다. 주상절리 해식절벽이다.
조금 더 안쪽으로 가자 동굴이 보였다. 파도의 작품이다. 삼각형 모양 절벽에 삼각형 모양 동굴이 마치 집 같아 보였다. 아래 부분은 수직으로 서있는 주상절리가 기둥과 벽면처럼 장식하고 있고, 지붕을 이루는 주상절리는 어두운 색과 다양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여러 차례 용암 분출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 셈이다.
해식동굴로 들어가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외부에는 주상절리의 옆 모양이 뚜렷하고, 천장은 주상절리가 잘린 단면으로 채워져 있었다. 불규칙한 벌집 모양 모양이 스페인 알함브라 궁전에서 보았던 천장 장식을 연상시켰다. 자연의 걸작이다.
바다를 바라보니 거친 파도 너머로 디르홀레이 반도와 해식동굴이 뚜렷하게 보였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주상절리 전시장이 펼쳐졌다. 층마다, 위치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주상절리를 한 곳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주상절리는 분출한 용암이 흐른 방향과 수직으로 생긴다. 한편 용암이 물을 만나서 빠르게 식을 때는 주상절리 모양이 불규칙해진다. 분출이 일어날 때마다 용암이 흐른 방향과 용암의 성분이 달라지기도 하고, 때로는 물을 만나서 이처럼 다양한 주상절리가 생긴 것 같았다.
해식기둥이 있는 곳까지 산책을 하고 되돌아 나왔다. 아주 아름다운 해변이었다.
주상절리에 올라가 보았다. 계단처럼 되어 있어서 상당한 높이까지 오를 수 있었다.
다시 길을 재촉했다. 가도 가도 인가 하나 보이지 않는다. 이끼로 덮힌 평평한 용암대지가 끝없이 이어졌다. 처음 보는 풍경이다.
운전에 지칠 무렵 졸음쉼터 같은 휴게소가 보였다. 엘트흐레인(Eldhraun) 용암대지 휴게소이다. 이끼를 살펴보려고 들렀다. 아이슬란드 남해안 거의 전체가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이자 카틀라(Katla) 지질공원이고, 이 곳도 그 중 일부였다. 이 지역이 세계에서 가장 넓은 용암대지이다. 1783년에서 1784년에 걸쳐 8개월 동안 계속된 라키산의 대규모 분출로 인해서 이 지역에는 엄청난 용암이 쏟아져 나왔다. 주변 25km의 땅이 갈라지고 130여개의 분화구가 생겼다. 17m 두께의 용암이 땅을 뒤덮었다. 엄청난 양의 화산재와 유독 화산가스도 함께 분출되었다. 이 때문에 아이슬란드에서 인구의 20%에 이르는 9천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이 분출로 인해서 북반구는 수년 동안 흉년에 시달렸다. 1789년에 발생한 프랑스대혁명도 이로 인한 흉작으로 민중이 기근에 시달린 탓도 있다고 한다. 이 휴게소에는 이끼 사이를 걸을 수 있는 트레일이 있었다.
트레일을 걸으면서 이끼를 살펴보았다. 이끼의 두께가 40에서 60cm에 이른다고 한다. 이렇게 두꺼운 이끼는 처음 보았다. 이끼는 식물이 살기 힘든 건조한 땅이나 바위, 추운 곳에서도 잘 살수 있다. 비가 내리면 물을 흡수하고 광합성을 하며, 건조한 날씨에는 희뿌연 색으로 변한다. 가까이에서 보니 두꺼운 빛 바랜 연두색 카펫을 덮어 놓은 것 같았다. 사람이 밟으면 쉽게 죽는다고 들어가지 말라고 되어 있었다.
엄청난 용암대지와 두꺼운 이끼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다시 길을 재촉했다. 읽기도 힘든 이름을 가진 피아드로글르브르(Fjaorarglijufur) 계곡 전망대에 도착했다. 그런데 계곡이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살펴보니 한참 아래 쪽으로 사람들이 가고 있었다. 우리도 지친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느 덧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걸어내려가서 만난 계곡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구비 구비 이어지는 깊은 협곡의 사면을 녹색 이끼들이 장식하고 있었다. 일찌기 본적이 없는 풍광이었다. 숨이 막히고 그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협곡의 깊이는 100m에 이른다고 했다.
이 계곡은 약 200만년 전 빙하기에 생겼다고 한다. 이 계곡 바로 위에 깊은 호수가 생겼고, 그 호수 물이 수천년 동안 이 계곡의 약한 암석을 지속적으로 침식시켜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계곡에는 여러 단계로 떨어지는 멋진 폭포도 보였다. 해가 질 무렵이어서 좋은 사진을 남기기 어려웠다.
내일 여건이 되면 이 멋진 계곡을 다시 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의 숙소, 마그마호텔에 도착했다.
작은 호수가에 이 곳 전통 가옥 형식의 객실이 죽 늘어서 있었다. 잔디로 덮혀있는 지붕이 아이슬란드 다웠다.
방에 들어서자 호수 전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문명을 벗어나서 아주 한가로운 여유와 고독을 즐기는 기분이 들었다.
오늘도 많은 새로운 경험을 했다. 셀야드란스포스 폭포, 에이야퍄틀라요쿨 화산 분출 전시, 스코가포스 폭포, 레이니스드랑가 주상절리 해안과 해안 침식 지형, 두꺼운 이끼로 뒤덮힌 광활한 용암대지, 이끼로 장식된 멋진 피아드로글르브르 협곡을 살펴보았다. 200km를 이동하면서 유네스코 세계 자연 유산인 아이슬란드 남해안의 신기하고 새로운 풍광을 만날 수 있는 꽉찬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