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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취리히

유럽 여행/스위스

by Travel Memories of GG Couple 2024. 11. 2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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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5

오늘은 스위스 여행 마지막 날이다. 제일 큰 도시 취리히를 돌아보기로 했다. 알프낙스타드에서 루체른으로 기차를 타고 왔다. 우리나라 전철같은 기차였다. 루체른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취리히로 왔다. 50분 정도 걸렸다. 루체른과 취리히를 운행하는 기차는 2층이었다. 승객이 아주 많은 구간일 것이다. 취리히는 스위스의 상업, 금융, 문화, 산업의 중심지이다. 도시 인구는 약 45만명이고, 인근 지역을 모두 합치면 183만명이라고 한다. 먼저 역 주변에 있는 관광안내소를 방문했다. 취리히의 관광 명소 추천도 받고, 취리히 교통 1일권을 구입했다. 하루동안 취리히의 트램, 버스, 배를 모두 탈 수 있는 표였다. 제일 먼저 취리히 호수가를 산책하기로 했다. 트램 정류장은 취리히 중앙역에서 멀지 않았다. 전광판에 안내가 잘 되어 있었다. 

회슈가세(Hoeschgasse)에서 내렸다. 주변에 취리히 대학 보타니칼 가든과 차이나 가든이 있어서 좋을 것 같았다.  호수가로 걸어 내려갔다. 차이나 가든을 통과하니 취리히 호수가 나타났다. 루체른 호수처럼 큰 호수이다. 길이가 21km, 최대 폭이 5km인 가늘고 길다란 손가락 모양이라고 한다. 빙하로 깊게 침식된 U자곡에 빙하 녹은 물이 고인 것일 것이다. 푸른 호수에는 하얀색 요트가 정박되어 있었다. 바닥이 보일 정도로 물이 아주 맑았다.

호수가를 따라 산책로가 잘 꾸며져 있었다. 취리히 시민들과 함께 상쾌한 아침 산책을 시작했다.  

걷다 보니 오른 쪽에 부드러운 곡면을 가진 예술 작품이 서 있었다. 영국의 세계적인 미술가, 헨리 무어의 양 조각상(Sheep Piece)이다. 원작을 확대해서 만든 것으로 1971-71년에 세웠다. 양 세 마리가 서로 얽혀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과 이별 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인간은 결국 어디에서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 같다. 

다시 걷다 보니 호수가에 특이한 건물이 보였다. 써핑보드가 입구 양쪽에 서 있다. 건미가 수영장이라고 알려준다. 여름에는 사람들이 수영과 일광욕을 즐기는 곳이다.  

조금 더 걷자, 호수 수영장에서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호수 가운데에는 군데 군데 나무 데크가 있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도시에서도 자연을 즐길 수 있어서 부러웠다. 그만큼 환경을 잘 관리하고 있을 것이다.  

계속 걷다가 취리히 오페라하우스를 만났다. 1891년에 완공되어 취리히 오페라와 발레단의 본거지가 되었다고 한다. 유럽 최초로 전기 조명을 갖춘 오페라 공연장으로 좌석이 2300여 개나 된다고 한다. 오페라하우스 앞에는 젝세로이텐 광장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광장에는 여기저기 의자가 놓여 있었다. 유명한 교육학자 페스탈로찌 동상도 서 있었다. 귀족만을 위한 교육이 아닌 민중교육을 주창한 분으로 1746년 취리히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다시 호수가를 따라 걸었다. 호수가에는 백조를 비롯한 많은 새들이 몰려 있었다. 다가가보니 사람들이 새에게 빵을 주고 있었다. 서로 먹겠다고 몰려드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조금 더 걸으니 리마트강이 시작되는 퀘이브리지가 나왔다. 다리 위에서 바라본 취리히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좌측에는 프라우교회, 성베드로교회, 우측에는 그로스뮌스터가 보였다. 교회의 뾰족한 종탑 아래에는 고풍스러운 빌딩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긴 역사를 가진 도시다웠다. 취리히는 로마시대에 로마인들이 세웠다고 한다. 1218년에는 신성 로마 제국의 자유 도시가 되었고 1351년 스위스 연방에 가입했다. 1519년에는 울리히 츠빙글리의 종교 개혁의 중심지였으며, 이후 직물 공업이 발달하고 길드 세력이 성장해서 도시의 실권을 쥐게 되었다. 시민들의 힘이 커졌을 것이다.  

오른쪽 강변을 따라 걸어갔다. 종교개혁의 중심 인물인 츠빙글리의 동상을 만났다. 그 뒤에는 취리히의 물의 교회(바서 키르헤, Wasserkirche)가 서 있었다.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이라고 한다. 16세기 종교 개혁 당시 츠빙글리가 이곳에서 설교를 하며 종교 개혁 운동을 일으켰다. 19세기에 복원되어 현재는 종교 행사와 음악회 등이 열린다고 한다.  

물의 교회를 지나자 오른쪽에 취리히 그로스뮌스터(Grossmünster)가 보였다. 쌍둥이 종탑이 우아하게 높이 서 있었다. 스위스 최대의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이다. 1153년에 시작하여 약 100년 후인 12세기 말에 완성되었다. 취리히의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교회 내부는 단순하고 장엄한 편이었다.   

스테인드 글라스가 매우 특이했다. 한 쪽 스테인드글라스는 소를 소재로 한 것이었다. 다른 쪽에는 마주보는 사람의 얼굴을 실루엣으로 나타내는 것도 있었다. 여태까지 본적이 없는 스타일이었다. 성경이나 신보다는 사람이나 일상을 나타낸 것 같았다.  

입구 위에는 파이프 오르간이 단정한 모습으로 서있었다. 매주 토요일 낮 12시에 무료 연주회가 있다고 한다. 오늘이 목요일이라 아쉽다. 

강 건너편에 있는 프라우뮌스터로 가려고 다리에 들어섰다. 다리 위에서 취리히의 멋진 모습을 감상할 수 있었다. 

프라우뮌스터는 성모 교회라고도 부른다. 853년 동프랑크 왕국의 루트비히 2세 왕이 세운 수녀원의 부속 성당이었다고 한다. 신에 가까이 다가 가고자 했는지 뾰족하고 높은 녹색 지붕이 두드러져 보였다. 

프라우뮌스터에서는 마침 오늘 파이프오르간 연주회가 있었다. 영국에서 온 아주 유명한 연주자 같았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교회 건물 옆에서 준비해 온 점심을 먹으면서 기다렸다. 어차피 연주회가 열릴 때까지는 교회 내부 입장도 제한하고 있었다.

건물 내부는 소박한 편이었다. 파이프오르간은 상당히 커 보였다. 오르간 연주는 대단한 것 같았다. 잔잔하게 시작하더니 교회 내부를 가득 해우는 웅장한 음악이 이어졌다. 점심을 먹은 직후라는 것이 문제였을 뿐이다. 기꺼이 1인당 10유로를 기부했다. 

이 교회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샤갈의 작품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입장료(5 유로)가 있다고 한다. 이 스테인드글라스는 파란색과 녹색, 그리고 노란색 유리로 만들어져 아름다운 빛을 발한다고 한다. 파이프오르간에 집중하느라 사진을 찍지 못했다. 츄리히닷컴(zuerich.com)에서 빌려온 사진으로 대신한다. 

프라우뮌스터 광장에는 영국의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1946년 9월 19일에 취리히를 방문한 윈스턴 처칠이 여기에서 "유럽이 생기다(Europe Arise)"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했다고 한다. 이 연설은 유럽 연합(EU) 형성의 시초가 되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역사의 현장이다. 

골목을 따라서 성 피터 교회(St. Peter Kirche)로 이동했다. 유럽에서 가장 큰 시계가 있는 종탑으로 유명한 곳이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13세기에 세워졌다고 한다.  

린덴호프 언덕으로 가기 위해 다시 골목길을 따라 걸었다. 이 인근은 중세 공방 장인들의 본거지였다고 한다. 부를 쌓은 장인들은 건물의 파사드를 아름답게 꾸며서 멋진 거리가 되었다. 좁은 길 양쪽에는 다양한 깃발이 걸려 있었다. 스위스 국기와 지역의 깃발인 것 같았다. 

전망이 좋아서 취리히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린덴호프 언덕에 도착했다. 넓은 광장 겸 정원처럼 꾸며져 있었다. 

전망대 난간에 서서 앞 쪽을 바라보았다. 푸른 리마트 강과 건너 편에 프레디거키르헤, 취리히대학교가 보였다. 멋진 도시이다. 

오른 쪽을 바라보니 그로스뮌스터와 그 주변을 볼 수 있었다. 

린덴호프 언덕을 내려와서 리마트 강가를 따라 걸었다. 여러 교회의 종탑과 오래된 시가지가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웠다. 

강가를 따라 한참을 이동했다. 박물관으로 가기 위해 리마트 리버 크루스(Limmat River Cruise)를 타기로 했다. 오페라하우스 근처에 선착장이 있었다. 배가 도착하고 제복을 입은 선원들이 승객들이 내리고 타는 것을 도왔다.  

배는 나즈막했다. 승객들이 좌석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선창으로 도시를 구경하면서 란데스박물관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란데스박물관은 스위스 국립 박물관이다. 건물의 외관도 고풍스럽고 아름다웠다. 1894년 설립되어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스위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전시물로 채워져 있다고 한다.  

입구를 들어서자 처음 만난 전시는 스위스 여성들의 사회적 착취에 대한 체험을 다루고 있었다. 영상과 오디오를 통합한 전시 기법이 너무 생생했다. 내용은 상당히 거북했다. 스위스가 보다 나은 사회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 밖에도 스위스의 고대 유물, 무기, 종교, 예술 등에 대한 전시가 이어져 있었다. 개인적 관심 때문에 이 지역에서 산출되는 광물 전시에 눈길이 갔다. 구리 광물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또 다른 인상적인 전시는 중세 시대 금속 공예 장인 가문에 대한 것이었다. 상당한 전시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양한 금속 공예 기법의 발전과 그 결과로 만들어진 훌륭한 작품들, 그리고 이를 통한 부의 축적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정교한 금속 공예작품을 감탄하면서 둘러 보았다. 

박물관 관람을 마지막으로 취리히 여행을 마무리했다. 겨우 하루를 둘러보았을 뿐이지만 취리히의  오래된 교회와 구시가지는 오랜 역사와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교통편도 다양하고 편리했다. 호수와 강, 공원과 녹지가 많아 쾌적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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