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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칼틴스에서 더니든으로 가다.

뉴질랜드

by Travel Memories of GG Couple 2024. 5. 31.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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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3
큐리오 베이를 출발하여 더니든까지 가는 날이다. 이동거리는 175km 정도인데 쉬지 않고 가면 2시간 4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중간에 카시드랄 케이브, 넛지 포인트, 카카포인트, 라나크 성에 들를 예정이다. 창 밖은 아직 어둑어둑하다. 큐리오 배이가 속해 있는 칼틴스 지역에 카시드랄 케이브가 있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다. 해변에 있어서 썰물 시간에 맞춰서 가야 한다. 서둘러 출발했다. 칼틴스 숲을 통과해서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갔다. 국립 보호림이다. 보호림 안에 멋진 폭포가 여러 개 있었다. 하지만 시간 때문에 들르지 못했다. 8시 반 경에 카시드랄 케이브 주차장에 도착했다. 1인당 10달러를 지불했다. 관리인이 10시 전까지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숲길을 따라 바닷가를 향해 걸었다. 1km 정도 거리라고 했다. 양치식물이 많아서 정말 중생대 숲속 같았다. 공기는 맑고 시원했다. 아주 쾌적한 길이다.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부지런히 걸었다. 20분 정도 걸렸다.

마침내 와이파티 해변에 도착했다. 고운 모래가 깔려 있다. 우측에 해안 절벽이 늘어서 있었다. 

해변을 10분쯤 걸으니 첫번째 동굴이 보였다. 좁고 위로 길다란 모습이 성당의 문 모양 같았다. 그래서 카시드랄 캐이브인가 보다. 

입구로 걸어 들어갔다. 양쪽의 높다란 퇴적암층이 위압적인 느낌을 준다. 1억6천만년 전인 중생대 쥬라기에 형성된 사암이다. 
동굴의 규모가 정말 컸다. 동굴 중앙 윗부분에는 밝은 암맥 여러 개가 수직으로 나 있다. 파쇄대이다. 약한 부분이어서 파도에 쉽게 침식되어 동굴이 생긴 것이다. 

동굴은 매우 깊었다. 바닥에는 모래가 깔려 있었다. 밀물 때에는 동굴 속 깊은 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는 증거이다. 한참을 들어가다가 뒤를 돌아 보았다. 저 멀리 환하게 입구가 보였다. 

동굴 끝에 다달았다. 큰 둥근 자갈들이 깔려 있다. 파도에 마모된 것이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촬영하고 있다. 펭귄이다. 소리를 죽이고 펭귄을 살펴보았다. 동굴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줌업해서 촬영을 하니 펭귄의 뒷모습이 찍혔다. 테크놀로지 덕이다. 펭귄의 모습이 귀엽다. 아마 더 깊은 곳에는 새끼 펭귄들이 있을 것이다. 동굴 속에서 펭귄을 볼 수 있다니, 운이 좋은 날이다. 

이 곳에서 동굴은 급하게 휘어져 있다. 동굴을 따라 걸어가니 다시 환한 빛이 보였다. 두번 째 동굴 입구이다. 

두번째 동굴은 입구가 더 넓었다. 동굴에서 바라보는 해변의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다. 

동굴 밖으로 나와서 두번째 동굴을 바라보았다. 정말 크다. 

바닷물이 서서히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밀려왔던 파도가 물러난 곳에 남아있는 얕은 물 거울이 하늘을 비추었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아쉬움에 뒤돌아서 카시드랄 케이브를 바라 보았다. 두 개의 동굴이 한꺼번에 보였다. 바닷물은 동굴 입구 가까이까지 밀려왔다. 두 발은 이미 바닷물에 젖었다.

숲길을 거슬러 돌아왔다. 차에서 잠시 쉬면서 간식을 먹었다. 관리인은 철수할 채비를 했다. 우리도 서둘러 출발했다. 큰 길까지 2 km 가량 운전해서 나왔다. 우리가 나오자 관리인은 입구에 있는 문을 걸어 잠궜다. 밀물에는 위험하기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았다. 이 지역은 20세기 초에 뉴질랜드 정부에 의해서 원주민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었다. 19세기 중반 정부의 정책과 유럽에서 온 사람들의 활발한 토지 매입 때문에 남섬에 살던 마오리족 후손들은 땅을 잃게 되었다.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처지가 되었다. 정부는 마오리 랜드라고 부르는 이 보호구역을 지정했다. 하지만 이 곳은 농사에 적합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나마 마오리족 후손들은 살 수 있는 터전을 갖게 되었다.  
두번째 목적지인 너겟포인트를 향해 출발했다. 가는 길에 카카 포인트에 잠깐 들렀다. 해변이 멋진 작은 마을이었다. 물개가 많은 곳이라고 하는데 한 마리도 없었다.

카카포인트에서 멀지 않은 너겟포인트 주차장에 도착했다. 등대와 전망대까지는 1 km 남짓이다. 조금 걸으니 트레일을 따라 멀리 토카타 등대가 보였다. 

트레일 주변의 경치는 아름다웠다. 가파른 사면은 바다로 이어지고, 바다에는 크고 작은 바위섬들이 이어져 있었다. 해안 바위 위에는 물개들이 쉬고 있었다.  

20여분 정도 걸어서 등대 전망대에 도착했다. 바다를 360도 전망으로 볼 수 있었다. 바로 앞에는 작은 바위 암초들이 모여 있다. 파도에 침식되어 생긴 것이다. 모양이 사금 덩어리 같아서 너겟포인트라고 부른다.  

해식 아치가 있는 바위섬도 보였다. 

돌아오는 길에 보이는 해안선 풍경도 무척 아름다웠다.    

가까이에 있는 로어링 배이에도 들렀다. 노란눈 펭귄 서식지라고 한다. 깊이 들어온 만과 해변이 평화스러웠다. 모양이 화산 분화구 같았다. 하와이 오아후 섬의 하나우마 배이 모습과 비슷하다. 

다시 카카포인트로 돌아왔다. 건미는 무인 가게에서 지역 농부의 꿀을 샀다. 

푸드트럭에서 피시앤 칩스, 그리고 피시 샌드위치를 시켰다. 맛이 좋았다. 지역 주민 한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호주 삼성에서 일하고 퇴직했다고 한다.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니 반가워했다. 앞 바다에 전복이 아주 많다고 하면서 전복 요리 사진을 보여주었다. 식사 초대를 하겠단다. 바로 더니든으로 가야 한다고 했더니, 터널비치에 꼭 가라고 추천해 주었다.

더니든에 도착했다. 작은 도시였다. 숙소에 가기 전에 라나크 성에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아름다운 경치를 만났다. 더니든으로 길게 들어와 있는 만이다. 이 만을 둘러싸고 있는 둥근 모양의 능선은 오래된 화산 분화구이다. 분화구 한 쪽이 침식되어 바다물이 들어온 셈이다. 긴 만을 가지고 있으니 더니든은 천혜의 항구이다. 

라나크 성에 도착했다. 고풍스러운 모습이다. 뉴질랜드의 유일한 성이다. 스코틀랜드 바로니얼 양식이라고 한다. 규모는 크지 않았다. 

성 주변에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다. 먼저 정원을 천천히 둘러 보았다.  

울타리처럼 다듬어 놓은 나무와 작은 연못, 꽃 아치 길 사이로 성이 살짝 보였다. 

전망대 같은 파빌리온도 만났다. 멋진 정원 사이로 만이 내려다 보였다. 

성 내부로 들어갔다. 입구에 사자상이 양측에 서 있다. 외벽은 돌을 잘 가공해서 만들었다. 

아래 층은 박물관을 겸하고 있었다. 성의 역사와 성을 만든 사람의 가계도가 소개되어 있다. 이 성을 만든 윌리엄 라나크는 호주에서 태어나서 호주 멜버른 인근에서 금 채광과 은행업을 했다고 한다. 뉴질랜드 남섬의 오타고 지역에서 금이 많이 발견되고, 사람들이 몰려왔다. 더니든은 오타고의 중심 도시였다. 그는 1867년에 이 지역의 은행장으로 오게 되었다. 당시에는 호주나 뉴질랜드 모두 영국의 식민지여서 왕래가 자유로웠던 것 같다. 금이 많이 산출되는 오타고 지역의 은행장으로 큰 부를 축적한 라나크는 성을 만들기로 했다. 당시 이 지역은 뉴질랜드에서도 오지에 불과했다. 그는 석축, 목공, 석고 작업을 위해서 영국과 스코틀랜드, 그리고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전문가를 초빙했다. 건축 자재도 전세계에서 구입했다. 웨일즈에서 슬레이트를, 프랑스에서 철과 자기, 벽돌, 호주에서 목재, 가죽은 미국에서 수입했다. 뉴질랜드 북섬의 나무도 사용했다고 한다. 홀 중앙에 윌리엄 라나크의 모습을 세워놓았다. 야심만만했을 것 같다. 

실내는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화사하고 아름다웠다. 천장의 목조 구조, 방마다 다른 색으로 칠한 벽, 화려한 샹들리에 등 정성이 많이 들어간 건물이다. 

성 위에 올라가니 양 쪽에 바다가 내려다 보였다. 훌륭한 위치이다. 

라나크 성을 둘러보고 더니든에 있는 숙소(Motel on York)로 왔다. 아주 깨끗했고, 내부 구조와 시설도 마음에 들었다.

저녁에는 더니든 시내 구경을 나섰다. 남섬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이다. 인구는 13만명 정도이다. 19세기 중반에 스코틀랜드인들이 많이 이주해왔다고 한다. 아마 스코틀랜드와 기후가 비슷할 것 같다. 이 도시의 중심지를 옥타곤이라고 불렀다. 팔각형으로 된 잔디 광장이었다. 주변에는 카페와 식당 등이 많았다. 아래 사진에서 시계탑이 있는 고풍스러운 건물이 시청이다. 시청 앞에는 화려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시청 왼쪽에는 고딕 양식의 성바울 성당이 서있었다. 아름다운 도시이다.   

시청 반대 쪽에는 음식점과 바가 이어져 있었다. 이 곳에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진 오타고대학교가 있고 오타고 폴리테크대학도 있다. 젊은 사람의 비율이 20%가 넘어서 뉴질랜드에서 가장 젊은 도시이다. 

건미는 아이스크림을 즐겼다. 

나도 맥주 한 잔을 빠뜨릴 수 없었다. 좀 더 오래 머물고 싶은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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